경북북부지방 문화유적을 찾아서
鄭 時 植 會員(국방대학원)
청우회원들이 가장 즐겨 찾는 문화탐방코스를 이번에는 경북의 북부지방을 선택했다. 불교문화와 유교문화가 어우러져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영주, 봉화지방을 찾아 옛 조상의 숭고한 정신을 더듬어 보고자 하여 먼저 인터넷을 뒤적여 영주지방의 자료를 제공해 드린다. 봉화군의 문화재인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제201호), 이몽룡의 실존인물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가평리 계서당(중요민속자료 171호), 내성유곡충재관련유적(사적 및 명승3호)등에 관한 자료는 봉화군의 협조를 받아 탐방 당일 제공할 계획이다.
■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사적 제313호)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은 구조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으며, 벽화는 봉황, 새, 구름, 역사 등이 다채롭게 조화를 이룬 소중한 유물로서 삼국시대의 회화, 종교관, 내세관 등 신라와 고구려의 문화교류 이해에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순흥 읍내리 비봉산 기슭에 있는 읍내리 벽화고분은 1985년 초에 문화재관리국과 대구대학교 합동으로 발굴되었는데 신라시대인 539년경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분의 구조나 양식에서 고구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이는 순흥이 신라의 변두리이자 고구려의 변방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순흥 어숙묘(사적 제238호)는 고 신라시대의 고분으로 신라시대 관리였던 사람의 무덤으로 천장의 연꽃 석문의 인물상이 남아 있다. 1971년에 세상에 알려졌으며, 우리나라 고미술의 권위자인 진홍섭 교수팀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벽화와 각명만 남아있음이 확인되었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 선생이 고려 말 유현인 회헌 안향 선생의 연고지에 다가 조선 중종 37년(1542년) 사묘를 세우고 안향선생을 주향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안향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학사를 이건하여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창건한 데서 비롯되었다.
중종 39년(1544년)에는 안축 선생과 안향 선생을 배향하였으며, 명종 원년(1545년)안향 선생의 후손 안현이 경상감사가 되어 서원의 사당을 참배하고 각종 경비를 지원하였다. 명종 4년(1549년)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경상감사 심통원에게 서원의 편액과 토지, 노비를 하사해 주도록 계청하자 감사 심통원이 조정에 계청함으로서 이듬해 명종 5년(1550년) 5월 왕명으로 대제학 신광한이 서원의 이름을 <소수(紹蓚)>라 지으니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딱게 하였음”이란 뜻이다. 명종 임금이 손수<紹蓚書院>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으니 곧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공인된 사학기관으로 인정되었다. 인조 11년(1633년)에는 서원을 창건한 주세붕 선생을 추향하였다. 회헌 안향(1243-1306)선생은 고려 원종 원년(1260년) 진사과에 급제한 후 우사의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전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 이며 문신이다. 신재 주세붕(1495-1554)선생은 많은 저서를 남겼고 황해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경내에는 강당, 동.서재, 학구재, 서교, 문성공묘 등이 있고 회헌 영정(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58호)등 중요유물과 각종 전적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는 이곳이 통일신라시대 이래 사찰이 없음을 알려주는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주세붕 영정(보물 제717호)등이 남아 있다.
% 경(儆)자 바위 전설 소수서원 입구에는 죽계수가 흐르고 있어 운치를 돋우고 있습니다. 죽계수는 멀리 초암계곡에서 발원한 계곡으로 주위로 바위가 병풍처럼 펼처져 있으며, 울창한 노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이 경치를 바라보면 경(敬)과 백운동(白雲同)이란 글씨가 음각된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당시, 숙수사에 있던 불상들을 모두 이 바위 아래 소(沼)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한이 맺힌 불상들이 밤이면 소를 첨벙거리며 뛰어올라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이를 전해들은 주세붕이 소의 바위에 경(敬)자를 음각하게 하였더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敬)은 주자철학의 근본으로 공경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로써 불상들의 한이 위로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주요 문화제
- 회헌영정(국보 제111호)
고려 충숙왕 5년(서기 1318년)에 그려진 성리학자 안향의 영정으로서 현존하는 최고의 고려시대 영정이다.
- 주세붕 영정(보물 제717호)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을 창건한 문민공 주세붕의 영정으로서 16세기 초상화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소수서원 사료전시관
국보 1점, 보물 2점 등 소수서원 소장 유물을 전시하고 모형과 설명판을 설치하여 서원의 역사와 기능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절에서 의식을 행할 때 절 마당에 부처와 보살의 행적을 그린 당번을 높은 깃대에 다는데, 이 깃대를 고정시켜주는 지주돌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으뜸 사찰이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 알리고 그가 딱은 화엄교학을 펴기 위해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고,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을 세웠으니 <安養>은 곧 <極樂>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
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 왕 7년(1358년)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2년(1377)조사당이 재건되었다고 적혀 있다.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 석조여래좌상, 당간지주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조사당, 소조여래 좌상, 조사당벽화, 고려 각판, 원륭국사비, 삼층석탑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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