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글***/답사기

4월의 꽃길 나들이

是夢 2006. 5. 24. 15:09
 

              4월의 꽃길 나들이

                                         

                                                         鄭 時 植(대구시 교통관광국장)

 

  청우회의 1년에 한번씩 하는 문화유적답사를 위한 사전준비를 위해 올해도 답사에 나섰다. 전라북도 관광과와 고창군, 부안군의 관광담당자의 조력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현지 문화원장등 향토사학자와 전화로 대강의 코스를 정하고는 회원들의 미각을 돋우고 잠자리를 편하게 마련하기 위해 사전에 현지답사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사전답사가 많은 회원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답사를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이러한 부담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사전준비하고 동행할 친구와 1개월 전부터 약속을 해 둔 것이다.

  4월 15일 토요일 오전 11시에 대구를 출발, 서변 인터체인지를 통과하여 88올림픽고속도로를 향한 그랜져의 경쾌한 질주는 우리들을 새롭게 펼쳐질 풍광에 대한 호기심과 모처럼 만난 친구와 함께 갖는 즐거움에다가 짓누르는 사무실의 분위기를 탈출한 상쾌한 맛은 일상의 지루함을 떨치고 파격의 짜릿한 맛을 즐기면서 신이 창조한 봄의 향기에 젖어든다.


  붐비던 차량행렬도 거창을 지나면서 한적해 진다. 이 고속도로에서 자주 만나던 교통순찰차도 볼 수 없는 드라이브의 쾌감을 만끽하면서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담양을 향해서 질주했다. 응달의 진달래가 봉우리를 터트리는 정겨운 산야에는 봄의 노래가 들려온다. 자작나무의 터실하면서도 하이얀 껍질은 ‘닥터 지바고’의 배경을 연상케 한다.     

  순창을 지나면서 마을 뒷산마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다. 죽세공품으로 유명한 담양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인가 보다. 이 지방에서 나는 대나무는 孟宗竹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대나무중에서 가장 굵은 종류이며 죽세공품이나 건축재로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88올림픽고속도로의 종점인 담양을 들어서니 오른쪽 입새에 오석에 예서체로 ‘竹鄕’이란 비석이 우리들을 맞이 해준다. 왼쪽에는 ‘대나무 시험 포장’이 있고 ‘죽물박물관’도 한번쯤 볼만한 이 지방의 자랑꺼리임에 틀림없다.  2년 전 가족과 함께 들려 전라도 양반 곳의 멋진 한정식을 대접받았다는 김 형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 간 ‘추성회관’은 장사가 어려워 휴업중이라 한다. 낙담을 하고는 돌아서다가 행여나 싶어 되돌아서 주인아주머니를 찾아 우리의 뜻을 이야기하고 솜씨를 보여 주기를 간청하였다. 오랫동안의 휴업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운 듯하다가 30여명의 단체손님을 그냥 보내기에는 애석했던지 30명 이하는 곤란하다면서 주문에 응했다.

  여행은 낯선 풍물을 보는 기쁨도 좋지만 그보다는 역시 그 지방의 독특한 미각을 즐기는 재미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청우회의 나들이에는 각별히 좋은 음식점을 찾는데 유의하고 있다. 늦은 점심을 맛있게 요기하고는 담양을 벗어나 내장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인가를 벗어나니 푸르른 대나무 숲 사이로 산도화랑 벚꽃이랑 진달래가 아름답게 수놓은 산과 들이 시야에 가득히 들어온다. 백양사를 거쳐 노령산맥을 넘는 자동차는 숨 가쁜 줄 모르고 거뜬히 넘는다. 산맥을 넘고 보니 담양에서 이 산맥까지는 그렇게 오르막이 아닌 것으로 보아 퍽 고지대였음을 알 수 있다. 추령 마루턱에 올라서니 전국에서 단풍의 아름다움이 최고라는 내장산 주봉인 서래봉의 웅장한 모습과 깊은 골짜기가 한눈아래 내려다보인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돌아 내장사에 다다르니 상춘객들이 한가로이 봄을 즐기고 있다.

  단풍은 가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봄 단풍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했다. 계곡에서 능선까지 별다른 잡목은 보이지 않고 단풍나무만으로 구성된 임상(林相)이 이제 봄눈을 티우면서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을단풍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젊고 신선한 봄맛을 가득히 머금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한껏 젊게 만든다.


  젊을 때는 잠자리가 좋지 않아도 불편을 느끼지 못했으나 이제는 집 나서면 잠자리가 편해야만 된다는 중늙은이의 생리 때문에 하루 밤이라도 유숙을 하게 되면  준비를 맡은 사람에게 가장 부담을 주는 과제 중의 하나가 숙소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선운사 현지의 여관들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되어 1시간이 채 못 되는 거리에 있는 내장산관광호텔을 예약하였다.  전국에서 이름난 단풍관광지답게 주점과 위락시설들도 있어 하루 저녘을 즐겁게 보낼 수 있으리라.

  정읍시를 감싸고도는 정읍천의 30리 벚꽃 길은 이번 여행길에서 얻은 최대의 수확이다. 벚꽃으로 잘 알려진 곳은 진해와 쌍계사 벚꽃이 유명하며 경주 보문단지의 벚꽃도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전주와 군산간의 100리길 벚꽃가로수도 회자되고 있다. 20여년의 연륜이 쌓인 듯한 井邑川의 벚나무는 한창 생육이 왕성한 장년기를 맞아 화세가 절정에 달한 듯 꽃수가 풍작을 이루고 꽃 색상이 밝아 화려한 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정읍시를 들어서면서 2차선의 도로양편에 줄지어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어림잡아 30리길은 되리라. 마침 ‘제5회 정읍시 벚꽃축제’가 잘 다듬어 놓은 정읍천의 잔디밭에 준비 중이라 오늘 저녁은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는 날인가 보다.


  정읍에서 호남고속도로 진입로를 지나 4km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흥덕을 거쳐 선운사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면 고부를 거쳐 줄포로 가게 된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줄포로 향했다.

  선운사가 있는 고창 땅은 물산이 풍부하고 인재가 많이 배출된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삼한시대부터  비옥한 터전에 자리를 잡고 경제적인 부를 누리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한 이 고장은 인촌 김성수 선생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초창기의 근대적 산업화에 앞장선 민족자본의 경성방직을 창설한 김년수와 진의종, 김상협 두 국무총리를 비롯해 4월 17일 타개한 무형문화재 제5호인 김소희명창(흥덕 출생)등 인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선운사는 고창의 농업, 칠산 바다의 어업, 곰소의 소금이라는 경제적 뒷받침으로 창건하여 운영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선운사의 첫 번째 명물은 역시 동백꽃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갈 4월말이면 만개하여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뽑낼 때이니 이번 답사를 기대해 볼만 하다. 이곳 선운사의 동백은 우리나라의 자생지로서는  북방한계로서 식물학적 가치가 매우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송창식은 노랫말을 통하여 동백꽃을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이라 표현했다. 우리 회원들은 동백꽃을 보고 무엇이라 표현할 런지?

  선운사에 가면 경내의 문화재들도 관찰해야겠지만 동구에 있는 미당 서정주의 시비와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의 비문을 빠트려서는 안 되리라. 선운사의 창건비화나 볼거리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추천한다.


  시간상 선운사를 들리지 못하고 줄포로 직행하여 조기와 미나리장을 봤다. 이곳 조기는 해난사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도부근에서 잡은 것으로 영광굴비로 알려진 맛있는 조기이며, 미나리는 우리지방과는 달리 깊은 물에서 재배한 것이라 키가 크고 육질이 두꺼우며 부드러운 맛으로 잘 알려진 특산품이다.

  실학사상의 태두인 반계 유형원선생의 유허지를 둘러보고는 천일염 생산으로 유명한 곰소에서 젓갈류 몇 가지를 쇼핑하고는 내소사로 향했다. 곰소만의 바다풍경이 정겹기 그지없어 바닷가를 거닐고 싶었으나 미루어 두었다가 회원들과 함께 즐기기로 하고 내소사의 전나무 숲과 관음봉, 세봉으로 포근하게 둘러싸여 있는 내소사를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들렸다.


  13년 전 미국 이민을 가겠다는 李兄의 결심을 돌려보려고 오늘 동행한 김형과 함께 변산반도에 왔을 때는 빨래판같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였으나 지금은 잘 포장되어 서해안의 낙조를 즐기면서 격포에 닿았다. 격포항은 제법 붐비는 포구이면서 채석강이라는 관광자원 때문에 횟집도 많고 값도 비쌌다. 조기와 바다낚시로 유명한 위도는 이곳 포구에서 하루 2회씩 쾌속선이 왕래하고 있단다. 채석강의 신비로운 조화와 서해의 은은한 낙조를 보면서 소주 한잔과 해삼 한점을 안주삼아 여유를 즐기는 것도  4월 30일로 미루고는 부안읍에 들러 우리 회원들의 오찬장을 부안식당으로 마련하였다. 외관은 볼품없는 식당이나 서해의 명품인 조기백반과 조기탕은 이 지방에서 자랑할 수 있는 명품이라니 믿고 예약을 했다.

  이것으로 사전답사의 임무를 마치고는 귀로에 올랐다. 전주의 성미당 회관에서 육회에 소주를 곁들여 비빔밥으로 늦은 저녁밥을 먹고는 남원을 거쳐 대구에 도착하니 익일 0시 30분이나 되어 잠을 놓쳐서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모의하러 동오에 건너간 제갈양의 활약을 보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청우회지 199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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