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글***/수상기

꽃샘추위 유감

是夢 2006. 9. 26. 10:47
 

꽃샘추위 유감


올해는 봄이 빠르다고 언론이 야단스럽게 수다를 떨면서 꽃 소식이 일주일가량 빨리 올 것이라고 예견하였지만 대구의 꽃 소식은 예년과 다름없이 두류공원의 벚꽃은 식목일에 만개하였다.

올해는 오히려 꽃샘추위가 유별나게 심하여 사람들이 긴 겨울을 떨치고 봄을 맞이하는데 매우 힘이 들었다. 특히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영하의 온도가 계속되어 움츠리고 있다가 2월 14일에는 최저 영상 5.7도에 최고 17.6도로 기온이 급상승하여 성급한 사람들은 겨울옷을 벗어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에는 영하 3.7도로 내려가 며칠간 한겨울의 날씨를 보여 변덕이 매우 심했다. 이러한 쌀쌀한 날씨가 3월 초순까지 계속되다가 3월 5일부터 근 일주일간 최저기온이 영상 6도를 넘고 최고기온이 17도에서 20도를 오르내리는 따듯한 봄기운이 감돌아 사람들은 물론 식물도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이 온 줄 알았다. 그러나 3월 12일부터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13일에는 평년기온보다 13도나 낮은 영하 5.9도까지 내려가는 이상기온이 3일간이나 계속되어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감기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많았다.

이와 같이 2, 3월에 며칠간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하여 성급한 봄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다가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한 겨울 날씨로 돌변하여 꽃망울의 경거망동을 호되게 꾸짖는 것을 꽃샘추위라고 한다. 

이 꽃샘추위 때문에 대구의 상징 꽃인 목련이 호된 시련을 겪어 꽃도 채 피기 전에 그 단아한 자태에 흠집이 생겨 꽃이 활짝 피어도 마치 흙탕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꼴불견의 모습을 많이 보았다. 꽃샘추위의 피해를 입은 목련은 양지바른 곳에서 시민들에게 봄소식을 일찍 준해주려던 꽃들이며, 음달이나 북풍을 맞으며 봄의 소식을 늦게 전하던 꽃들은 올해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시민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3월 중순경 전북 고창지역 답사 길에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지방을 지나다 보니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평화스러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던 대나무 숲이 오상고절의 그 푸른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마른 갈대 잎이나 억새처럼 말라버려 흉물이 되어 폐허가 된 마을처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담양지방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올해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2월 중순과 3월 초순의 일시적인 봄기운에 대나무 잎의 세포가 봄이 온줄 착각하고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 활동을 개시했다가 갑자기 영하의 추운 날씨가 며칠간 계속된 데다가 차가운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얼어버려 대나무 잎이 말라버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피해를 입은 대나무 잎은 봄이 되면 일부는 숨어있던 잎눈에서 새잎을 내어 살아나지만 심한 동해(凍害)를 입어 숨은 잎눈마저 얼어 죽은 것은 대나무 줄기마저 죽어버리는 극심한 피해를 주기도 하는데, 대나무가 꽃샘추위의 피해를 많이 입는 이유는 난대성 식물이기 때문에 추이를 많이 타기 때문이다. 그러나 뿌리는 살아 있어 새로운 죽순이 돋아나서 대를 잇는다.

팔공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젊은 시절 수도했다는 천성암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암자를 감싸 안고 있어 초라한 사찰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이 천성암의 대나무는 다른 지방의 대나무와는 달리 올해도 푸른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살펴보니 이곳의 위치가 해발 4, 5백 미터나 되어 2, 3월에도 낮 온도가 식물이 활동할 만큼 기온이 상승하지 않았고 밤 온도는 늘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갔으며, 북쪽이 열려있어 찬 바람이 불어와 항상 방한복을 두껍게 입고 추위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비교적 겨울나기가 좋은 남향에 자라잡고 있는 식물이 꽃샘추위의 피해를 많이 입게 되며, 응달이나 고도가 높거나 설한풍이 불어오는 북쪽에 있어 겨울나기가 힘든 곳에 자리를 잡은 식물은 꽃샘추위의 피해를 입지 않거나 그 피해가 적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꽃샘추위에 꽃망울이 피해를 입어 자손번식에 지장을 입거나 입이 말라 나무에 결정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그 긴긴 겨울의 혹한과 설한풍을 잘 견뎌 이겨내고도 봄의 속임수에 끝마무리를 잘 하지 못해 입게 된 자연의 준엄한 꾸짖음이라고 생각된다.


선운사를 둘러싸고 있는 동백나무는 선운사를 건립한 백제 위덕왕 이후에 조성된 숲이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자연 상태에서는 제일 북쪽에 형성된 동백 숲이라 하여 천여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귀중한 숲이다. 그런데 이 동백 숲이 금년 봄에 내린 눈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수령이 400여년을 넘는 동백나무가 40, 50포기나 쓰러져 산림청 직원들이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일부는 회생을 하지 못하고 말라가는 잎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봄에 내리는 눈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눈이 내리면 소나무나 동백과 같은 상록수에는 결정적인 큰 피해를 준다. 날씨가 매우 추운 겨울에 내리는 눈은 건설(乾雪)이라 하여 눈 자체가 꽁꽁 얼어서 많이 내려도 잎에 붙어 있지 않고 흘러 내려 나무에 피해를 주는 일이 적지만, 봄에 내리는 눈은 습설(濕雪)이라 하여 눈의 온도가 낮아 서로 엉겨 붙기 때문에 많이 내리면 상록수의 잎에 쌓여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쓰러지거나 가지가 꺾이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이것을 설해(雪害)라고 하며 우리나라 산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에 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에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나이가 600년이나 되는 장사송(長沙松)이라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다. 이 소나무도 이번 봄에 내린 눈으로 하늘을 향해 고고하게 뻗어나간 줄기가 여러 개 꺾여서 그 아름다운 모양의 균형이 일그러질까 염려가 된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본 우화가 생각이 난다.

번성하게 잘 자라고 있는 나무가 더 크게 뻗어나가려고 잎을 무성하게 키우고 가지를 위로 뻗어 위세를 부리다가 태풍을 만나 그 무게를 세찬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려는데 옆의 나무가 받쳐주어 겨우 살아남게 되었다. 태풍이 지나간 후 이 나무는 옆에 나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네 혼자 태풍을 견디기도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해서 나를 도와주고도 괜찮으냐?”고 물으니 옆에서 받쳐준 나무가 “네가 위로 가지를 뻗어 나갈 때 나는 땅 밑으로 뿌리를 키워 태풍에 대비한 것뿐이야.”라고 대답했다. 


식물도 환경의 변화를 잘못 판단하면 꽃샘추위를 만나 꽃이 얼기도 하고 심지어는 개체 자체가 큰 손상을 입게 되고, 줄기를 지탱해 줄 뿌리를 키우는데 소홀하면서 줄기만 키우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용서 받지 못한다.

우리 사람들도 꽃샘추위에 속지 않고 태풍에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이 변하는 환경의 흐름에 적응하거나 극복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없으면 꽃샘추위를 만난 봄꽃처럼 큰 상처를 입게 되고, 미래의 험난한 위기를 대비하는 자세를 망각하고 오늘의 현실에 만족하거나 허세를 부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좌절을 만나게 된다는 교훈을 꽃샘추위에서, 그리고 설해(雪害)를 입은 상록수에서 얻은 이 봄의 큰 수확이다.




2006. 4. 14.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

전무이사 정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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