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
이정웅
느릅나무는 한자로 산유목(山楡木) 또는 유목(楡木)이라 한다. 재질이 좋아 따라서 신라시대에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특히 속껍질 유피(楡皮)는 암이나, 위장병, 종기를 치료하는데 쓰여 귀중한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나무 100가지”에 실려 있지 아니하여 아쉽게 여겨진다. 몇 년 전 자유분방한 한 중년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트가 메디슨 카운티의 지붕 덮인 다리를 취재하기 위해 한적한 시골의 한 농가를 방문한다. 그 집에는 한때 문학교사였으나 자신의 꿈을 접고 농사일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는 유부녀 프란체스카가 살고 있었다. 때마침 남편은 외출 중이었고 두 사람의 단 나흘 간 짧은 사랑을 나눈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사회적으로는 금기된 두 사람의 사랑이이야기지만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이 오히려 기혼자들을 대리 만족케(?) 하였는지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다리를 주제로 러브 스토리의 원조가 우리 나라이자 그 다리가 느릅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향토 경북대학의 박상진 교수가 쓴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에 의하면 한국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천년도 더 오래 전에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존재했었다. 당대 이름 난 스님이면서도 파격적인 언행(言行)을 하면서 ‘누가 나에게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 벋칠 기둥을 찍으리라.’ 라고 하는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떠돌아다니던 한 스님을 눈여겨 본 태종 무열왕이 그가 아이 가지기를 원하는 것을 알고 시종을 시켜 데려오게 하자 짐짓 태종의 뜻을 알아챈 원효가 다리를 건너면서 일부러 떨어진다. 젖은 옷을 말린다는 구실을 붙여 요석 공주가 머물고 있는 궁으로 들어 보내니 마침내 설총을 낳았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 다리의 재료가 바로 느릅나무라는 것이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들은 그 후 단 한 번도 만나지 아니하고 애틋한 사랑을 가슴에 묻고 일생을 살았다. 그런데 비해, 원효는 신라 불교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고, 그가 낳은 설총이 우리의 고유 문자 ‘이두’ 창안하는 등 국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니 이야기 자체 역시 ‘느릅나무 다리’에서의 사랑이 오히려 더 생산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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