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글***/수상기

출근길의 상념

是夢 2006. 8. 22. 15:17
 

출근길의 상념


鄭時植(대구광역시 수성구 부구청장)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한 아침, 출근길에 나선다. 이 좋은 계절에 흙을 밝으면서 삶의 터전을 향해 세 식구 모두가 새 아침을 출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작년 한 해 동안 국방대학원 교육과 4개월여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다가 발령 난 곳이 수성구청이다. 결혼 후 내 집을 마련하여 스물 네 해 동안 정착한 곳이 이 수성구이기도 하다. IMF라는 경제적 위기와 50년만에 수평적 정권이 교체되는 어수선한 시기에 신정부의 개혁에 따른 인사이동이 위에서부터 이루어지면서 지방자치단체까지 이르는 시간이 길어져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받은 보직이라 무척 반갑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생애에서 가장 오랫동안 정착한 곳의 행정을 담당하게 되어 더욱 기뻤다.

 

  첫 출근 날부터 걸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근 3일째부터 걷기 시작했다. 만촌우방타운에서 큰 길 따라 구청까지는 35분정도 걸렸다. 지하철2호선 공사로 만신창이가 된 인도부록, 거리에 내놓은 쓰레기가 아직도 상당량이 비규격봉투에 넣어 버려지고 있다는 문제도 파악이 되었다. 며칠간 뒷골목도 다니면서 비슷한 코스를 다니다가 너무 단조롭고 차량의 매연과 인도부록의 촉감이 딱딱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운동량이 부족한 듯 하여 산길을 택하였다.

 

  담티고개에서 황금동으로 나가는 일부 개설된 도로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그린벨트로 가꾸어진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한 산책로를 따라 오르내린다.

테니스 코트에서는 남녀가 어우러진 복식 게임이 열전을 벌리고 있다. 흥미 있는 게임에 이끌려 나무그루 턱에 넘어질 뻔 하다가도 눈길은 볼을 따라간다.

백운옥 빌라를 지나 영남공고 남편 세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으로 오르면 참나무와 소나무가 덤성덤성 그늘을 지우고 등산화 신은 동네 아저씨와 아줌마가 열심히 오르내린다.

넥타이에 정장을 한 ‘나’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마치 요즈음 갈 곳이 없어 집을 나와 등산길에 오른 실직한 사람같이 보이지는 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고개를 넘어 범어동으로 들어서면 대구박물관 앞에서 내린 영남공고 학생들이 산길을 올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등교하고 있다.

까까머리에 희색 깃을 단 흰 남방의 하복을 입은 학생들 이마에는 싱싱한 여드름이 돋았는가 하면 안경너머로 쏟아지는 눈빛이 천진스럽고 싱그럽다.

까만 안경을 끼고 스포츠 모자를 눌러쓴 연약한 체구의 학생은 나를 만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다.

기특한 녀석이다. 오늘은 그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을까? 시간이 어긋난 것일 테지 하면서 내일을 기다린다.

 

산골짜기 경북고등하교 담 옆에는 새 길을 내기위해 중기가 들어와 정지작업을 한다. 벌써 길이 날 곳에는 나무를 베어내고 붉은 깃대를 꽂아두고 있다.

저기에 두 개의 굴을 뚫어 황금동과 담티고개를 연결한다고 한다. 저 길이 완공되면 만촌네거리의 교통량을 줄여준다니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내리막길인데도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면서 학생들과 어깨를 비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 범어목련 아파트와 황금우방2차 아파트 사이로 빠져나가 나비유치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가 길을 건넜다.

어제부터 버스노선을 전면 조정하여 시민들이 매우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버스정류장의 노선안내판을 아직도 바꾸지 않았다. ‘저래서야 되겠나?’ 자책하면서 오늘 회의에서는 아직도 바꾸지 않은 버스정류장의 안내판을 전수 조사하여 조속히 바꾸도록 해야지 다짐하면서 덕원고등학교의 담장을 돌아 범어공원으로 들어섰다.

 

망으로 얼굴을 가린 꿀 뜨는 아저씨의 손길이 매우 분주하다. 며칠 전에 벌통을 옮기더니 벌써 꿀을 뜨고 있다. 만촌동과 범어동 일원의 아카시아 밀원이 풍부한가 보다. 오르막을 오르는 등에서는 제법 땀이 베어 입하의 날씨로는 많이 당겨진 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다.

길가에 새로 놓은 의자가 있다. 오르막을 오르는 노인들이 쉬어가라는 쉼터인가 보다. 2년전만 하드라도 보이지 않던 갈색 청설모가 길을 안내하다가 갈림길에서 나무위로 올라가는 곡예를 하면서 하직인사를 한다.

일 경찰청장이 경찰청과 인접한 무학산에 다람쥐 80여마리를 방사한다고 한다. 작년에도 꿩을 방사하고 먹이를 주는 정성을 들이고 있다하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대구사랑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대가 크다.

 

  작년에 만들어진 파고라 의자와 아침에만 열리는 노천 찻집에 노인들이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다. 시중의 여론이 형성되는 공원 사랑방인 셈이다. 서쪽으로 팔공정 활터가 보인다. 청구가든하이츠에 살면서 아침마다 새벽운동을 하던 곳이다. 다시 단전에 힘을 모으고 시위를 당겨 145m의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경쾌함을 맛보아야지 다짐을 한다.

 

  가벼운 옷차림의 중년 여인네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내리고, 샷틀콕을 받아넘기는 아낙네의 기합소리가 범어공원의 상쾌한 아침을 열고 있다.

내리막길에는 인조목으로 잘 다듬은 계단이 있으나 자연스러운 흙의 부드러운 촉감을 밟으며 옆길로 내려온다. 서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아주머니 한분이 아는 체를 하기에 어디서 본 듯하여 목례를 하자 “혹시 정시식 관장님 아니시라예?”하면서 이름을 똑똑하게 대면서 물어온다.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저를 알지요?” 

종합복지회관에 다녔어예. 그때 친구들 만나서 관장님 이야기하면서 어디 계시는지 궁금해 했어예.”

“그렇습니까? 저는 지금 수성구청에 있습니다. 친구분들과 한번 들리이소.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궁전맨션에 있다는 그분과 헤어지면서 5-6년전의 만남을 기억해 주는 그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꼭 찾아오기를 기다려야지……

 

  북쪽의 마지막 봉우리에는 아홉 번이나 당선된 현역의원의 부친 묘가 철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북향을 하고 있다. 이 명당자리에 철망으로 둘러친 펜스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철조망사이로 난 문을 들어서면 울창한 녹음사이로 호젓한 아카시아꽃길이 나를 반가이 맞아준다. 떨어진 꽃을 밟는 마음이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넉넉해진다.

망울진 복숭아가 다가올 여름의 풍요를 약속하고 낯선 방문객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솟아오르는 백로의 날개 짓은 평화를 만끽한다.

늦잠을 즐기던 까투리가 화다닥 홰를 치면서 오솔길 따라 몸을 감춘다. 도심 속에도 이렇게 평화롭고 한적한 자연의 조화를 즐길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출근길인가!

 

  산자락의 끝에 있는 계단을 내려서니 아내의 모교인 대구여고 뒤뜰이다. 연습용 농구대를 지나 운동장으로 나오니 정원석에 앉아 책을 읽는 학생의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싱그럽다. 좋은 아내를 길러준 교정을 처음 걸어보는 감회가 크다.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 학교에 감사를 하면서 교문을 빠져나와 구청에 이르니 8시 10분.

  이마에 벤 땀을 훔치면서 1시간 남짓한 출근길의 상념에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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