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교통행정시찰 ***
溫故知新의 都市 후쿠오카
鄭時植(大邱市 西區 副區廳長)
지척에 두고도 먼 이웃 나라
김해공항 이륙 후 30분 만에 후쿠오카공항에 착륙하였으니 제주도보다 가까운 咫尺의 거리에 둔 일본임을 실감하였다. 그럼에도 해외 나들이 다섯 번째 만에 일본에 그것도 변방에 불과한 규슈(九州)지방에 첫 발을 딛는 감회가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임을 실감케 한다.
동대구역을 벗어나니 계절의 여왕답게 온 산하는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그윽한 싱그러운 초여름의 내음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天惠의 良港을 이루고 있는 후쿠오카만을 내려다보며 처음 만날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요동을 친다. 공항 건물을 내려오는 계단에서부터 일본다운 분위기가 나를 맞이 해준다. 얄미울 만치 깔끔하게 딱아진 바닥에서부터 밖에 나와 보이는 건물과 도로가 모두 잘 정리 정돈되어 있다.
택시로 예약된 Solaria Hotel에 도착하니 제복을 입은 안내원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일본인다운 친절을 베풀어 준다. 후쿠오카시(福岡市)의 중심지인 덴진(天神)에 있는 이 호텔은 ‘니시데츠’(西鐵)가 2년전에 개관한 백화점과의 복합건물로서 숙박료가 15,000엔이나 하는 고급호텔이다. 커텐을 걷으니 후쿠오카만을 가로지르는 도시고가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구의 첫 전세기 기착한 후쿠오카시
대구 상공인들의 염원인 국제공항의 결실인 첫 비행기를 후쿠오카로 띄울만큼 대구와 지리적으로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대구를 비롯한 경북의 교포가 많은 지역이다. 禹鍾淏총영사의 안내에 의하면 시내에는 7,000여명(통계년보 6,909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청도군과 대구출신들이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총영사는 첫 비행기의 취항을 환영하는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었다면서 대구 - 후쿠오카간의 정기노선이 빨리 취항하여 양도시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338.2km2에 인구 126만명, 52만세대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시는 대구와 비교해서 인구는 반에 불과하나 자동차는 47만대로서 대구와 같은 수를 보유하고 있다. 기후는 강우량 1700mm(대구 1030.6mm), 최저기온 -3.3℃(대구 -20.2.℃), 최고기온37.1℃(대구 40℃), 년평균 16.2℃(대구 13.2℃)의 온난한 기후로서 살기 좋은 곳이다.
후쿠오카시는 에도(江戶)시대(1700 - 1867년)에 시의 동쪽지역은 상인들이 사는 ‘하카타(博多)’라는 상업지역으로, 서쪽지역은 후쿠오카성을 중심으로 한 무사들이 사는 ‘후쿠오카(福岡)’로 개발되었으며 이 두 지역 사이를 나카가와강(那珂川)이 흐르고 있어 자연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가 1889년 4월에 이 두 지역을 ‘후쿠오카(福岡)’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市가 되었으며 도시를 상징하는 역의 이름을 ‘하카타역(博多驛)’으로 부르게 되었다.
국제화를 위한 ‘아시아태평양 도시’ 선언
산업이 발달하여 40%를 생산하고 자동차 조립공장도 싼 용지와 풍부한 노동력에 힘입어 급격히 증가규슈는 일본의 10%의 비중을 가진 세 번째의 섬으로서 농산물의 공급기지이며 최근에는 반도체 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대륙에 접근하고 있는 후쿠오카시는 1987년 ‘아시아의 거점도시’라는 테마의 기본계획을 제안하고 1989년에는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을 제정하여 아시아의 과학과 문화 발전 및 평화와 상호이해 증진에 기여한 아시아인에게 1990년부터 매년 9월에 시상하고 있다.
후쿠오카는 서쪽바다로 열려 있는 오랜 역사도시로서 또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도시로서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에 호응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1990년 ‘아시아태평양 도시’로 선언하고 아시아태평양의 모든 사람과 함께
1. 서로의 만남과 교류를 진척시키자.
2. 서로의 생활과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자
3. 서로의 건강과 평화를 지키자.
4. 서로의 현재를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자.
5. 서로의 사는 입장을 올바르게 인정하자라는 강령을 내걸고 국제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
이 도시의 국제교류 활동은 1962년 10월에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비롯해 중국의 광조우시(廣州市), 프랑스 보르도시, 뉴질랜드 오클랜드시, 말레지아 이포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부산시와는 1989년 10월에 행정교류도시 체결을 하였으며 자매도시 간에 실질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0년 9월에는 한 달간 아시아의 달을 정하여 아시아지역내의 대중적인 문화 예술행사를 개최하였으며 아시아 태평양 어린이 회의,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 미술교류전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금년 여름(8월23일 - 9월3일)에는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여 온 시가지에 분위기 조성을 위한 홍보의 열기가 넘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600여명의 선수를 파견한다는 계획에 따라 이곳 민단에서는 선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제11회 후쿠오카 국제 휠체어 테니스선수권 대회에서 향토기업인 동남무역의 이하걸, 곽동주 선수가 단 복식 우승컵을 안은 소식은 귀국 후에 신문을 통해서 알았다. 이와 같이 후쿠오카에서 개최되는 콘벤션이 년 간 900여건에 180만 명이 참가하며, 국제대회만도 70여건에 17만 명에 달한다.(1991년도 통계)
후쿠오카에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행사를 보면 후쿠오카 국제마라톤 대회, 국제여자 유도 선수권 대회, 국제 크로스 칸트리 대회, 세계여자 공수도 선수권 대회, 아시아 태평양 후쿠오카 국제 남자 배구 대회, 아시아 태평양 어린이 회의, 아시아먼스, 후쿠오카 프랑스 영화제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해마다 국제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大邱도 國際化에 눈을 떠야 할 때
후쿠오카의 국제화를 위한 시정부와 시민의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특히 최근의 부산에서 아시안 게임의 개최 확정, 광주의 대규모 비엔나레의 개최, 전주 무주의 동계 유니버시아드 개최 등은 우리 대구에 많은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국제화는 대규모 스포츠행사나 문화예술행사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학술행사도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이 된다. 우리 대구는 옛부터 학문의 중심지요 문화의 도시라고 자부하여 왔듯이 국제적인 학술행사를 유치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국제학술행사 개최는 대규모의 Convension Hall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대구에는 이러한 시설이 없어 국제화에 접근하기 어려웠으나 대우에서 옛 국세청자리인 문화동에 Hotel을 겸비한 대규모의 국제회의장을 갖춘 ‘대우센타’를 99년에 준공할 계획으로 지금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검단동에 조성중인 종합유통단지내의 무역 센타에도 3,000여 평의 대규모 콘벤션 센타를 1998년 준공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시설들이 대구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국제행사는 시설만 갖춘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 특히 전문가 집단인 에리트들의 강한 집념과 기업과 행정기관의 뒷받침은 물론 그 도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우수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대구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가 인구 250만 명을 포용한 거대도시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교육도시로 성장하여 왔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이 나라의 지도층을 구성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한 경험이 풍부하고, 대구의 주변에는 신라문화권의 경주와 동해안의 풍성한 관광자원, 유교문화권의 안동지방, 불교문화권의 해인사와 가야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고령 창녕지방과 부곡의 온천 위락시설을 갖춘 휴양지가 모두 두 세시간권에 두고 있어 대구는 국제행사를 할 수 있는 천혜의 여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의 국제화를 위한 의지와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향해 일어설 때가 되었다. 그래서 세계의 도시와 경쟁을 하여 세계 속에 살아있는 약진하는 도시가 되어야지 역사속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랜 전통문화를 가진 후쿠오카의 세계를 향한 열기를 느끼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져야할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자각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새벽 산책길에 만난 택시기사
동행한 직원과 새벽 산책 겸 시가지 구경을 나섰다.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하카다만을 감싸고 있는 시카노시마를 가보고 싶어 왕복요금을 물어보니 약 13,000-15,000엔(한화로 117,000원-135,000원)정도 나온다기에 너무 비싸서 낮에 배로 가기로 하고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내려준 곳이 오호리(大濠)공원이었다. 정문을 들어서니 맑은 물이 가득 찬 물의 공원이다. 약 2km의 호수 둘레에 있는 산책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깅이나 산책을 하며 즐기는 도심 속의 공원이다. 호수 가운데에 있는 몇개의 섬을 미려한 다리로 연결한 산책로를 걸으면서 맑게 보존한 물과 수초 사이로 한가로이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에서 후쿠오카시민의 도시를 가꾸는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한 시간여 산책을 끝내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하카다만의 신개발지역 안내를 부탁했다. 제복을 입은 40대의 기사가 안내한 곳은 바다를 매립해서 개발한 후쿠오카 타워, 후쿠오카 돔, Japan Hotel, 후쿠오카 박물관등이 있는 호크스 타운(Hawrks Town)이었다. 후쿠오카 타워(Fukuoka Tower)는 높이 234m로 바닷가에 있는 일본 제일을 자랑하는 타워로서 116m와 123m에 있는 두개의 전망대에서 하카다만과 후쿠오카시가지를 내려다 보는 경치는 일품이다. 택시기사는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타워의 유리가 8,800매로 구성되었다고 짧은 영어단어와 종이를 꺼내 필담을 하면서 까지 호기심 많은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정성을 다하고 있다. 일본 택시기사가 가지고 있는 직업의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기사 덕분에 유쾌한 일본의 새벽을 보낼 수 있었다.
프로야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팀의 홈 그라운드인 ‘후쿠오카 돔’은 일본 최초의 개폐식 지붕을 가진 스포츠 돔으로서 최대 5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경기장은 프로 야구 공식전 외에도 각종 스포츠 경기, 콘서트, 각종 콘벤션 등이 열리는 전천후 형 다목적 문화 체육공간이다. 이 후쿠오카 돔은 백화점 재벌인 다이에가 옆에 있는 Japan Hotel과 함께 건설하여 흑자운영을 하고 있는 후쿠오카시민이 자랑하는 민자에 의한 도시개발의 사례이다.
후쿠오카 돔 앞에 있는 후쿠오카시(福岡市) 박물관은 오래전부터 대륙의 문화를 전해주는 창구였던 후쿠오카 하카다의 역사와 삶을 최신 시스템을 이용하여 영상과 음향으로 소개를 하고 있다. 시카노시마에서 출토된 국보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의 金印등 56,000여점의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대지면적 5만 평방미터에 건물면적 1만 6천 평방미터의 서일본 최대의 박물관으로서 1990년 10원 18일에 개관한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 앞뜰의 수경(水景)은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과 벽돌 바닥에 부드러운 운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시다신사(櫛田神社)의 청일전쟁 전승 기념비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고 하자 이 택시기사는 꼭 한곳을 봐야할 곳이 있다면서 안내를 하겠다기에 그 친절에 고마워 응했다. 안내된 곳은 구시다진자에 있는 기온야마카사(祇園山笠) 축제 때 사용하는 가마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먼저 후쿠오카에서는 가장 오래된 신사와 신사 마당에 있는 기념비가 눈에 들어왔다. 10여m의 콘크리트 기둥에 새겨진 ‘明治二十七年征淸記念止碑’라고 새겨진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선뜻해 오는 것을 느꼈다. 1894년에 시작한 淸日戰爭을 승리로 끝낸 1895년에 건립한 전승 기념비를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이곳 신사에서 발견한 나의 기분이 선뜻함은 이 전쟁이 우리 땅에서 일어났다는 약소국의 서러움에 대한 분노 때문인가?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참배를 하고 있는 이 신사에 그 당시의 일본인의 기고만장한 자만심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驚異로움 때문인가?
이 신사 마당 한쪽에 ‘기온야마카사 축제’때 사용하는 ‘가자리야마카사’(장식된 가마)를 보관하고 있다. 높이 16m나 되는 가마의 장식은 화려하고 장엄하다. 750여년의 전통을 가진 이 축제는 매년 7월 1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는 여름축제로서 1979년에 국가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전국적으로 유명한 축제라고 한다.
천년이 넘어 보이는 은행나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신사의 연륜과 엄숙함을 증명해 주는 듯 버티고 서 있다.
시민에게 최대의 서비스에 역점을 둔 교통행정
5월 18일 10시에 후쿠오카시청을 방문했다. 현관에 들어서니 넓은 홀에는 시민들의 대기시설과 안내소, 공중전화와 청내 전화가 여러 대 놓여 있고 게시판에는 수도 물을 절약하자는 홍보물이 게첨 되어 있다. 홀 안에는 시민을 위한 서비스 공간과 시설뿐 시원스럽게 터져있다. 잠시 서성거리고 있으니 약속된 안내자가 와서 예약된 도시정비국장실로 안내 되었다. 국장실은 별실이 아닌 서무과내에 부설되어 있었다. 물론 전용비서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기오 다까요시(萩尾 隆吉)국장을 비롯 코지 나까무라(中村 耕二) 도시계획부장, 野瀨 繁隆 도시계획과장이 참석한 가운데 후쿠오카시의 일반적인 교통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의견을 교환한 후 자리를 옮겨서 ‘天神地區 駐車誘導 System’과 ‘福岡市 新Bus System’에 대한 설명을 담당계장으로부터 듣고 현지 안내를 받았다.
후쿠오카시의 교통행정은 우리와 같이 행정기관과 경찰관서로 二元化 되어 있어 단속과 신호체계관리는 경찰에서 담당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하철 운영과 건설은 우리시의 지하철본부(지하철 건설)와 지하철공사(지하철 운영)를 합친 것과 같은 사업소인 ‘교통사업관리자’를 두고 그 산하에 교통국을 두어 지하철 건설과 운영을 하고 있다.
‘天神地區 駐車誘導 System’은 도심의 업무 상업지구인 天神地區(대구의 경우 1차 우회선내의 중심가에 해당)에 있는 駐車場의 가동상태를 외곽지에서부터 전광판을 통하여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System으로서 주차장별로 만원일 경우는 붉은색, 주차 가능할 경우는 푸른색 전구로 정보를 알려주는 System이다. 시 외곽에서는 지구내의 모든 주차장의 위치와 주차 가능 여부를 알려주는 9개의 도식(圖式) 대형전광판을, 지구 가까이 와서는 그 위치에서 선택 가능한 주차장에 대한 주차가능 여부를 알려주는 도식 중형전광판을, 지구 내에서는 인접한 주차장의 안내표지와 주차가능 여부를 알려주는 문자식 소형전광판으로 3단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 System에 가입된 주차장은 100대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17개소의 주차장에 3,951대를 수용할 수 있다. 시청주차장은 공휴일에만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고 주차요금은 인접 민간주차장 요금보다 비싸게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민간주차장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청주차장은 평일에는 민원인과 시청차량만 이용이 가능하고 시 직원과 일반시민의 이용을 금하고 있다.
‘후쿠오카시 新Bus System’은 버스의 이용객 확보를 위해 운행시간을 확보하고 시민에게 서비스를 도모하는 버스의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System이다. 市는 이 제도 시행을 위해 버스 전용차선제, 버스 우선차선 확보, 버스 정거장을 확보 하고 후쿠오카현 버스협회가 중심노선 8.9km에 3억엔(정부와 시에서 각 6천만 엔 보조)을 투자하여 신 버스 시스템을 설치하였다.
‘新버스 시스템’은 버스 내에 車上表示器와 지붕에 안테나를 설치하여 誘導無線으로 전주에 설치한 路上안테나에 버스의 접근을 알리면 교통관제 센터를 통해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전광판에 부자가 울림과 동시에 도착할 버스의 노선번호와 도착시간을 알려준다. 한편으로는 교통관제센터에서 교차로 신호기에 버스의 도착을 알리면 ‘버스우선 제어장치’가 작동하여 버스가 우선 통과할 수 있도록 신호기가 작동을 하는 버스우선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다.
교통관제 센타의 통제 서비스 기능
5월 19일 우리 일행은 후쿠오카현 경찰본부를 방문하였다. 1971년에 설치한 경찰본부 교통관제 센터에서는 후쿠오카시의 교통흐름을 34개의 교차점에 49개의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하여 차량을 원활하게 흐르도록 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교통상황판에는 교차점마다 차량의 속도를 점검하여 시속 10km이하이면 적색, 시속 10-15km이면 황색, 15km이상이면 녹색표시가 나타나 교통흐름을 알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정체 정도에 따라 신호주기를 조정하여 교통난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화물차량이 하역작업을 하는데 종전에는 평균 15분 걸리든 것이 5분으로 단축 되었다고 한다.
‘여행시간 제공System’은 현 위치에서 앞으로이 관제센터에는 ‘위법주차 감시System’, ‘여행시간 제공System’ ‘고속주행 억제System’도 개발 설치하여 운전자의 편의 제공과 사고예방에 기여를 하고 있다.
‘위법주차 감시System’은 교통이 혼잡한 18개소에 감시 Senser를 설치하여 주차위반 차량을 감지하고 3분이 지나도 계속 주차위반을 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스피카를 통해 경고 조치를 하게 된다. 이때 교통관제센터에서는 위반차량의 번호까지 식별할 수 있다. 이 System은 운전자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어 상당한 갈 일정지역까지 현재의 교통여건으로는 몇 분이 걸릴 예정이라는 예고가 전광판에 나타나 운전자가 자기가 가고자하는 목적지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서비스 기능을 하고 있다.
‘고속주행 억제System’은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이상 주행하면 고속도로변의 감시 시스템(CCTV)에서 1차 경고음이 울리고 그 다음에도 계속 위반 주행하면 2차 감시 시스템에서 사진이 찍혀 범칙금 부과가 이루어지는 통제 System이다.
보행자 위주의 교통시설
5월 19일 새벽에는 택시를 타고 하카다역(博多驛)으로 갔다. 이른 새벽이라 출 입객은 그렇게 많지 않으나 하루 평균 이용객이 173,000명이 넘으며 신간선의 종착역으로서 도쿄와 오사카 등 혼슈의 주요 도시와 연결되는 규슈(九州) 제일의 역사다운 위용을 갖추고 있다. 조기 출근자를 위한 간이식사를 제공하는 식당과 사라다 등을 파는 빵집이 문을 열었을 뿐 관련 상가가 문을 열지 않아 조용한 역사를 돌아보고 지하철역과 연결된 통로를 빠져 나왔다.
넓은 역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는 역에서 북쪽 중심 시가지쪽으로 넓게 뻗은 다이하쿠도리(大博通り)를 걸었다. 다이하쿠도리는 2km에 걸쳐 야요시대(强生時代)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그림으로 그린 도판(陶板)으로 전시를 하고 있어 가로수의 녹색과 어울려 역사와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멋있는 길이다. 중앙분리대를 설치한 왕복 8차선의 차도에 10여m의 넓은 인도, 인도 상에 두 줄로 심겨진 가로수 그늘과 정성들여 가꾼 가로 정원은 보행자의 천국이다. 가로변의 빌딩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자동차의 흐름은 신호체계의 연동화로 자연스럽다. 깨끗하게 정돈된 가로에는 청소원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기관(三洋信販)의 직원들이 비짜루를 들고 길을 깨끗이 쓸고 있다. 남보다 일찍 출근하여(청소당번제인 듯 회사 마크를 넣은 흰 가운을 입고) 자기 빌딩 앞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을 청소하여 시민들에게 서비스하는 장면을 보고 후쿠오카 시민정신을 볼 수 있었다.
인도가 넓을 뿐만 아니라 장애자를 위한 시설, 공중전화, 버스정류장의 대기시설, 자전거 보관시설 등 시민을 위한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맹인을 안내하는 점자 블럭은 공공건물 내부까지 연결되어 있다. 장애자를 위한 시설은 완벽하게 되어 있어 우리가 배워야할 분야중의 하나다.
주택가의 주차장 시설
일본의 사찰을 구경하고 참배도 할 겸 관광안내도에 나와 있는 도초지(東長寺)를 찾았다. 대로변에 있는 규모가 대단히 큰 도초지는 문을 걸어 닫아 놓고는 낮에 만 개장한다는 팻말을 걸어 놓아 참배를 할 수 없었다. 다이하쿠도리에서 동쪽 주택가의 녹지에 자리 잡고 있는 쇼후쿠사(聖福寺)는 1191년에 일본 禪宗의 시조인 에이사이(榮西)가 건립한 일본 최초의 禪寺로서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찰이다. 목조 2층으로 단청을 하지 않은 웅장한 건축물이나 한국의 절처럼 주변의 산세와 어울리는 고요하고 사람을 반기는 다정한 곡선미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여기서도 문을 닫아 놓아서 참배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쉬움을 간직하고는 절 뒤의 주택가로 빠져 나왔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절 맞은편에는 오래된 민가와 골목길이 남아 있다.
동네 가운데에 있는 공한지에는 동네 주민들의 주차장이 일련번호를 붙여 잘 정돈되어 있다. 자기 집에 주차장을 마련 못한 사람들의 공동주차장이다. 일본에서는 자동차를 가질려면 차고지를 가지고 있다는 ‘차고지 확보 증명서’가 있어야만 차량등록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주택가의 공지에는 어느 곳이나 주차장을 만들어 두었으며 골목에 불법주차를 하면 즉각 신고를 하여 견인을 해 가므로 좁은 골목에도 항상 차량통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무질서한 주정차로 골목길의 통행이 어려운 사정을 푸는 길을 여기서 배워야겠다. 모든 차량은 자기차고지에 주차를 시키고 위반차량에 대해서는 주민의 신속한 신고와 예외 없는 당국의 철저한 단속이 따라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1962년부터 6대도시에서 처음 실시한 일본의 차고지증명제가 정착되기까지는 주택의 담을 헐고 방을 차고로 고치는 홍역을 치룬 값진 대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혁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변화와 그 변화에 따른 신속한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대구의 교통문제도 공무원과 시민의식이 변해야만 해결 할 수가 있다.
하카다와 후쿠오카를 가르는 나카가와(那珂川)
후쿠오카시를 관통하고 있는 나카가와(那珂川)의 동쪽은 상인들이 거주한 하카다(博多)지역이고 서쪽은 무사들이 거주한 후쿠오카(福岡)지역이다.
시내 중심지를 통과하는 나카가와의 수량이 매우 풍부하고 맑아서 매우 친근감을 주고 있다. 이렇게 맑은 나카가와도 대구의 달서천 만큼이나 더러운 물이 흘러 일본 공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하천오염의 극치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공업화에 의한 성장의 그늘을 없애는 노력을 70년대부터 시작한 성과가 지금은 도심을 흐르는 물에 고기가 살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고 한다.
우리도 하수처리장을 하천의 하류지역에 설치 할 것이 아니라 주택단지별로 오염배출지역에서부터 정화시설을 하여 도심의 하천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하여 도시민의 인심을 푸근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신천 하수 처리장에서 정수된 물을 중동교 까지 끌어 올려서 다시 신천으로 흘려보내면서 지산 범물지역의 생활하수를 지산동 하류지역에서 정수를 하여 신천으로 흘려보낼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도심을 통과하는 하천에 맑은 물을 흘려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 학문의 祖神 道眞公을 모신 太宰府 天滿宮
5월 19일 후쿠오카현 경찰본부 공식 방문을 마친 후 바로 옆에 있는 후쿠오카현 청사를 방문하여 민원정보 센터와 지하서점에서 몇 가지 자료를 입수하고는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후쿠오카현 청사는 도심지에 있었으나 최근에 외각 공원지역으로 이전을 하여 최신 건물에 주변의 수림대와 조화를 이루는 쾌적한 환경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찌요켄죠구찌(千代縣廳口)역에서 승차를 하여 나카스(中洲)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전철에 환승을 하여 덴진(天神)역에서 내렸다. 낮 시간이라 지하철은 한산하였으며 환승역에서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연결되도록 배차계획이 잘되어 있었다. 덴진역에서 내리니 바로 덴진지하상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들은 이와따야백화전에 들러 식품점과 신관에 들러 몇 가지 선물을 사고는 호텔에 들러 간소복을 차려 입고는 준비된 봉고차로 다자이후시(天宰府市)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니 다자이후시에 있는 天滿宮에 도착했다.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덴뿌라 정식으로 허기를 면하고는 진입도로 양편에 늘어선 관광객을 유혹하는 선물가게와 식당 구경을 하면서 입장을 하였다. 천만궁(天滿宮)은 일본 학문의 조신(祖神)이라고 존경을 받고 있는 道眞公(서기845년-903년) 의 묘소가 있는 곳에 신사를 지어 제사를 지네는 곳으로 일본식 조경으로 성역화 하여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다. 도진공의 詩에 자주 오르내린 매화를 심은 고목의 매화원에는 매실이 탐스럽게 열려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천년이 넘은 거목의 樟나무를 보고는 후쿠오카의 가로수가 이 樟나무로 가꾸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宮의 뒤편에는 궁도장이 있어 몇몇 여궁사가 수련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일본 활은 우리 국궁보다는 훨씬 길고 과격과의 거리는 50여m에 불과하였으며 장비와 격식이 일본답게 까다롭고 복잡하여 감히 한번 쏴보고 싶어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뒷동산을 한바퀴 돌아서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道眞公의 위대한 학문의 힘이 오늘의 일본의 국력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를 생각하면서 天滿宮을 뒤로 하고는 온천장을 찾아 떠났다.
露天으로 멋을 살린 유노센(湯乃禪)온천장
규슈에 와서 온천은 꼭 해봐야 된다는 李學魯국장님의 조언에 따라 우리 일행은 후쿠오카에서 가장 가까이 있다는 온천을 찾아 나섰다. 다자이후시의 반대편 쪽이니 후쿠오카를 지나 히사야마(久山)의 1.8km나 되는 터널을 지나 와끼다온천(脇田溫泉)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35분.
깊은 계곡의 양안을 따라 평화스럽게 자리를 잡은 이 마을은 犬鳴川을 중심으로 남쪽을 湯原溫泉이라 하고 북쪽을 脇田溫泉이라 하여왔으나 지금은 와끼다온천(脇田溫泉)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가 들어간 온천은 히사야마(久山)의 산록에 자리 잡고 있는 유노센(湯乃禪)이라는 온천은 2년 전에 개업(平成5年 4月 8日)한 노천온천으로서 식당과 호텔을 함께 경영하는 제법 큰 사업체인 듯 하다.
온천장에 들어서니 어둠이 깔리는 황혼 녁에 울타리 너머로 말끔히 정돈된 주차장에는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있고 마을 뒤에는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 犬鳴山의 높은 그늘이 드리워진 마을은 더욱 평화스럽다. 개구리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는 온천장에는 세 개의 노천탕이 있고 사우나와 샤워시설 등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나무 울타리로 반쯤 가린 노천탕은 위쪽에 있는 여탕에서 이브가 내려오면 혼탕이 되는 남녀 공용이나 내가 있는 동안은 끝내 이브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란과 머구를 심어 자연의 정취를 돋보이게 한 이 노천탕의 멋은 규슈 관광의 제일로 치고 싶다. 李국장님께 자랑을 했더니 마지막 날 오전에 다시 들려 수온 30도에 ph9.1의 강알카리성 라디움 온천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온천을 즐겼다. 후쿠오카시에서 40-50분 거리에 있는 후쿠오카현(福岡縣) 쿠라테쿤(鞍手郡) 와카미야마찌(若宮町) 오요지(大字) 와키타온천(脇田溫泉)의 멋을 즐길 기회를 가지도록 권하고 싶다.
교통난을 해결하는 지혜
5월 18일 오후에는 후쿠오카만을 감싸고 있는 우미노 나카미찌(海乃中道)반도에 있는 해양공원을 찾았다. 하카다(博多)부두에서 370엔의 표를 사서 2시 5분에 배를 탔다. 거대한 수족관과 돌고래 쑈를 하는 마린 월드(Marin World)와 그 옆에는 고급호텔, 청소년을 위한 캠프시설 등 각종 위락시설이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다.
해안가 잔디밭에서 다시 건너오는 배를 기다리면서 건너편의 후쿠오카항을 바라보니 뒤에는 산맥이 후쿠오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그 많은 태풍을 대한해협으로 비껴가게 한다. 활처럼 굽은 해안선을 따라 도시가 발달해 있고 우미노 나카미찌반도가 거센 대한해협의 파도를 막아주는 천혜의 양항을 이루고 있다. 후쿠오카공항에서는 3-4분 간격으로 여객기가 오르내리고 있다.
5시 9분에 배를 타고는 20여분 만에 하카다 부두에 도착해 택시로 호텔에 돌아 왔다. 마침 퇴근시간대가 되어 다소 붐비기는 했으나 비교적 교통흐름이 좋았다. 후쿠오카의 자동차는 시가지 면적이 대구보다 훨씬 작으면서 인구는 반에 불과하면서도 자동차는 대구와 비슷한 4십 7만여 대나 된다. 그러나 시내에는 체증이 별로 없으며 자동차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시민들이 자가용 이용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퇴근은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와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자가용을 가지고 시내에 들어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주차도 어렵고 주차요금도 비싸며 위반하면 예외 없는 철저한 단속으로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자가용의 도심 진입을 억제하는 시책을 강력히 쓰고 있으며 시민들도 이 시책을 잘 이행하고 있다.
일본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과의 자가용 이용을 비교하는 속담에 “우리나라 주부는 한가지 물건을 사기위해 세번 백화점에 가고, 일본 주부는 세 가지 물건을 사기위해 한번 백화점에 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양 국민을 잘 비교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동네에 있는 시장도 자가용 타고 가고 친구들과 모여 점심 먹으러 자가용 타고 다니는 우리네는 교통난의 해결이 특별한 시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것부터 실천하는데 있다. 물론 자동차를 보유하는 데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보다는 주행세를 메기는 사용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게 제도도 바꿔야겠지만---
이러한 자가용의 이용 실태는 승용차의 1년간 평균운행거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10,200km, 독일 14,500km 미국 14,700km에 비해 우리나라는 23,300km로서 일본의 2.3배에 달하고 있다.
日本을 이기는 길
불과 30분간의 거리를 둔 현해탄은 한일간의 문화적 교류를 빈번히 하여 같은 문화권을 형성하는 교량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으며 한편으로는 생존권을 다투는 갈등의 역사로 양국민의 적대적 감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고대에는 대륙의 문화를 소화하여 일본에 전파한 문화 선진국인 한국이 근세에 들어와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의 차이로 역전현상을 일으켜 주권을 상실하는 불행한 역사를 가진데 반하여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조화 접목시키는데 성공한 일본이 문화 선진국인 것처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바다를 향해 개방적인 일본이 서양의 산업 문명을 받아들여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서 서양제국주의 열강의 대열에 끼였으나 앞으로 전개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도 계속 앞서 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문화선진국인 프랑스가 후진국인 독일에 점령되어 일시적으로 주권을 상실하였으나 자유분방한 프랑스 국민이 패전의 쓰라림을 딛고 우수한 문화적 수준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의 패션을 주도하고 항공 산업, 고속전철과 첨단 지식산업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준 예를 우리는 묵과해서는 안 되리라.
우리도 일본을 이기는 길은 쇄국정책으로 산업화의 경쟁에서 밀려나 국권을 상실한 수치스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 세기말적인 대전환기에서 우수한 전통문화를 토대로 집단의 힘보다는 개인의 능력의 우수성을 필요로 하는 정보화 사회의 견인차 역할을 다하여 일본을 능가하는 민족의 역량을 발휘할 때가 왔다고 본다.
3박4일(1995년 5월 17일-20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그것도 일본의 중심부가 아닌 변방을 보고 일본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지만 그러나 본 것을 느낀 대로 기록해 두고 싶은 필자의 욕심이오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이 글은 ‘中岳 제5권’에 전재하고 ‘청우 제112호~ 제117호에 연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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