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첫 나들이
鄭 時 植 회원
36년간의 공직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홀가분하게 보내다가 가까운 일본을 여행하기 위해 김형 부부와 함께 부관 페리호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오후 다섯 시 승선하여 가방을 챙겨 넣고 밖에 나와 부산 외항을 보면서 일제 36년 간 나라 잃은 한을 품고 관부연락선을 타고 오갔을 우리 선조들의 참담한 모습을 새겨본다. 2m가 넘는 파도가 두려워 감상에 젖은 가슴을 달래고는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3월 30일 아침 미리 준비해온 케익으로 선실에서 쉰아홉 번째의 생일 축하를 받았다. 조그마한 일에도 항상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우정이 고마울 따름이다. 8시 30분 입국수속을 마치고 시모노세끼(下關)항에 첫 발을 디뎠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일본의 정돈된 모습이 우리를 맞이한다. 시모노세끼를 벗어나 히로시마(廣島)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동진 할수록 야먀구찌(山口)현의 산간지방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눈이 많이 내렸나 보다.
일본의 3대 경승지라고 자랑하는 미야지마(宮島)의 이즈구지마신사(嚴島神祠)를 거쳐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에 들렸다. 원폭의 참혹한 피해를 전시한 평화박물관을 둘러보고 지난번 왔을 때는 공원 밖에 있던 원폭피해 한국인 위령탑이 공원 안으로 이전하여 제자리를 찾은 것을 보고 그 때의 괘심한 마음이 다소 위안이 되었으나 주변의 분위기에 비해 초라한 감이 들어 솜씨 있는 조각가의 격조 높은 작품으로 새롭게 조성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혼슈(本州)의 오노미치(尾道)와 시고꾸(四國)의 이마바리(今治) 사이의 54.8km를 연결하는 제3의 교량인 시마나미 해교의 장관은 이번 일본 여행의 백미(白眉)라고 자랑하는 안내양의 말처럼 세또나이가이(瀨戶內海)에 떠있는 일곱 개의 섬을 연결하는 아홉 개의 다리는 교량가설 공법 전시장처럼 각기 다른 공법을 도입한 웅장하고도 미려한 교량은 석양을 장식하는 세또나이가이의 새로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첫 숙박지인 마쯔야먀시(松山市)의 오꾸도오고(奧道後) 호텔로 가는 길은 왕복 2차선으로 매우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우리가 탄 대형 버스는 느린 속도로 안전운행을 하고 있다. 뒤를 따르는 승용차들이 있으면 버스는 승용차가 앞지르도록 곳곳에 마련해 둔 대피소로 비껴준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에 나는 놀랄 뿐이다. 우리나라의 버스나 화물차와 같이 등치 큰 차량이 작은 차에게 양보하기는커녕 조금만 늦게 가거나 거슬리는 운행을 하면 위협하여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숙소가 가까워지니 안내양이 여행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일본인들은 남에게 피해주는 일을 지극히 삼가 하고 있다면서 식당이나 호텔, 온천장에서 지켜야할 주의사항을 세심하게 일러준다.
도오고(道後)온천은 3,000여년전에 발견된 역사가 오래된 온천으로 쇼오도쿠태자(聖德太子)가 이용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세 덕분에 내국인들의 이용이 많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이용객도 많이 보인다. 일본의 3대 온천으로 손꼽히는 벳부(別府), 아다미(熱海), 북해도(北海道)의 노보리벳쯔(登別) 온천 등 대부분이 유황온천인 것에 비해 도오고 온천의 알카리성 물이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하층에 자리 잡고 있는 온천장에는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이용객들도 조용조용하게 온천을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 온천처럼 사람이 많이 붐비는 것도 아니어서 휴양지의 조용함이 마음에 든다. 물소리를 야단스럽게 내는 사람도 없고 비누거품을 튀기는 사람도 없다. 목욕이 끝난 사람들은 각종 집기들을 제자리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자기가 쓰던 수건이나 비누도 제자리에 담아두고 자기 자리에 남아 있는 비누거품도 깨끗이 씻어내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 쓰던 수건을 아무데나 버려두거나 비누거품을 다른 사람에게 튀겨도 미안한 줄 모른다거나 1회용 면도칼이나 칫솔이랑 쓰던 물수건을 아무데나 버려둔다거나 몸을 씻지도 않고 온수 탕으로 들어가는 일,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탕 안에서 물을 튀기면서 수영을 하는 일들은 찾아 볼 내야 찾아볼 수가 없다. 관리인이 손을 대지 않아도 뒷사람이 들어와 사용하는데 조금도 불쾌하거나 아쉬운 점이 없을 정도로 유지가 잘 되고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한국 사람들도 일본 사람과 똑 같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도오고(道後)에서 두 번, 벳부(別府)에서 두 번, 모두 네 번의 온천을 이용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온천 이용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국내 온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모범이었다. 우리도 어른들이 솔선수범하여 처음부터 잘 가르치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질서를 잘 지킬 수 있을 텐데……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일본 사회의 규범을 철저히 교육시킨 질서의식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마땅히 배워야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자식의 기를 살린다고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아이가 제멋대로 뛰어다녀도 부모가 아이에게 제재를 하기는커녕 옆 사람이 아이의 번잡스러움을 보다 못해 주의를 주면 젊은 부모는 남의 자식에게 왠 간섭이냐는 듯 오히려 아이를 감싸는 일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아이의 기개를 살려주는 것은 마땅히 부모가 해야 할 일이긴 하나,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동의 규범이 있어야만 한다. 이 모두가 지켜야할 공동의 규범 위에서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야하고 남과 경쟁할 수 있는 패기를 길러주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 공동의 규범을 철저히 지키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믿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
400여년전에 축성한 마쯔야마성(松山城)의 곡선은 마치 날이 시퍼렇게 선 사무라이의 칼날처럼 날카롭다. 우리나라의 성이 백성을 함께 보호하려는 의도라면 일본의 성은 성주와 그 측근들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되었음을 그 규모에서 알 수 있다. 분재처럼 잘 다듬은 소나무의 자태에 감탄하면서 이른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와 작별을 하고 성문을 나서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우리 지역 출신 원로 정객이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연인지는 몰라도 이 도시의 이름인 송산(松山)으로 호를 지어 부른다고 김형이 귀띔해 준다.
시고꾸(四國)의 와야타하마(八幡병)와 규우슈(九州)의 벳부(別府)를 잇는 뱃길은 잔잔하고 아름답다. 그 잔잔한 바다 위에 결재를 받으러 온 직원이 핸드폰 소리에 당황하는 모습이 비치는 듯하여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다. 이제는 결재 받으러 올 직원도, 핸드폰 소리에 당황해 할 직원도 없다는 허전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백수의 첫 나들이는 떠날 때의 텅 빈 마음을 조금도 채우지 못한 채 부관페리호를 다시 타야만 했다. 그러나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일본인'을 배워야겠다는 소망하나를 담아서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다는 조그마한 소득이 그나마 나를 위로한다.
청우회지4월호(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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