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글***/해외여행기

사진으로 보는 실크로드(6.돈황·막고굴)

是夢 2008. 12. 10. 11:04

사진으로 보는 실크로드(6.돈황·막고굴)

 

'타오르는 횃불' 돈황(敦惶)

돈황은 그 지방의 옛말로 '타오르는 횃불'이란다.

사주(沙州)로 불렸던 돈황은 광대한 사막에 둘러쌓인 감숙성의 서쪽 끝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가욕관에서 돈황으로 가는 타림분지는 돌무덤과 낙타만이 먹을 수 있어 낙타풀이라고 불리는  '히어'라는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사막이다.

'히어'는 황사를 막고 사막을 개량하기 위해 사방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해서 제법 성공한 셈이라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이 황량한 사막에 도로가 뚫리고 전봇대를 세워 전화 줄을 잇고 기차가 다닌다.

이 사막에도 비가 내려 물이 흐른 흔적이 있고 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수로를 만들어 만에 하나라도 있을 재난을 예방하고 있다.  

                                   1)'고비'라고 불리는 황량한 벌판에 푸른 물이 가득한 호수(2008. 10. 29 촬영)

사막의 한가운데에도 푸른 물이 가득한 호수가 있다.

북쪽에 있는 마종산맥과 남쪽에 있는 기련산맥 사이에 놓인 고비를 하서주랑(河西柱廊)이라고 한다.

이 하서주랑에는 남북 양 산맥의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사막 곳곳에 분출하여 오아시스를 이루고 있다.

 

                                                2)마을에서 파는 과일을 사는 여성회원들(2008. 10. 29 촬영)

마을이 있는 곳은 오아시스다.

지금은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을 지하로 끌어들여 오아시스의 영역을 넓혀 농토를 만들고 당도가 높은 과일농사를 짓고 있다.

당도가 높아 맛이 좋은 과일은 값도 매우 싸고 농약을 뿌리지 않아 웰빙식품이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동안 부지런한 회원이 사과밭에 가서 우리돈 몇천원으로 사과를 몇자루나 사와서 40명 회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3)돈황 시내를 흐르는 하천에 반영된 명사산(2008. 10. 29 촬영)

돈황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에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둔 곳에 명사산이 내려와 물속에 잠겨있다.

식당에 차를 대자 어둡기전에 아름다운 장면을 잡으로 달려가서 다리 난간에 카메라를 놓고 몇 컷을 눌리고는 옆의 건물의 조명도 함께 잡았다.

4)비파를 머리 뒤로 들고 켜는 비파선녀상의 앞과 뒷 모습 (2008. 10. 29 촬영)

돈황의 번화가 네거리에 반탄비파상(反歎枇琶像)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이 반탄비파상은 막고굴 237호 벽화에 나오는 그림을 제작하여 돈황의 상징으로 설치한 것이다.

비파를 머리 뒤로 넘겨 신나게 연주하는 장면을 그린 것은 왜일까?

요즈음도 비틀즈가 키타를 어깨너머로 돌려서 신바람 나게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키타를 보지 않고도 잘 칠 수 있다는 것을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보이지만,

비파를 연주하는 여인의 풍만한 육체미, 특히 가슴의 아름다움을 비파로 가리기엔 너무나 애석하다고 생각한 화가의 기발한 발상은 아닐런지?  

 

                                               5)돈황 야시장의 양고기 굽는 요리사(2008. 10. 29 촬영)

돈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답사는 야시장을 둘러 보는 것이다.

야시장의 값싸고 다양한 상품을 쇼핑하는 재미도 다른데서는 체험하기 어렵다.

물건 사는 재미를 보다가 지나쳐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가 길에 내놓은 평상이나 의자에 않아 양고기꼬지구이를 안주삼아 고량주 한잔을 마시는 즐거움은 가히 돈황의 명물이라 할 수 있다.

 

                        6)돈황 야시장에서 이름난 양고기꼬지구이와 고량주를 즐기는 회원들(2008. 10. 29 촬영)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발굴된 막고굴

돈황 남동쪽 약 25km에 있는 막고굴은 명사산 동쪽 끝자락에 조성한 대규모 석굴로서 로춘 승려에 의해 첫 석굴을 만든 후(서기 366년) 천여 년 동안 계속적으로 만들어져 왔다.

남아있는 석굴이 700여개나 되는 세계최대의 석굴이며 493개소에 조성된 벽화는 불교문화의 발달과정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의 기법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1)막고굴로 들어가는 입구(2008. 10. 30 촬영)

지난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조영길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이신(李新) 수석연구원의 안내를 받아 소상한 설명을 제법 유창한 우리말로 유모어를 섞어가면서 잘 해주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그가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어 구면의 인사를 나누었다.

작년에는 이신씨 혼자서 안내를 해 주었는데 올해는 두개 조로 나누어 안내를 한다기에 나는 새로운 안내원을 따라 나섰다.

부개군(傅凱軍)이라 부르는 연구원은 나이에 비해 이마도 넓고 풍채가 제법 의연하면서도 우리말도 차분하게 요점만 설명하는 노련미까지 발휘했다.

첫 번째로 안내한 석굴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굴이었다.

17호 석굴은 16호굴로 들어가는 오른쪽에 밀봉된 것을 이 석굴을 지키던 왕변 스님이 우연하게 벌어진 벽 틈을 보고 발굴했다는데(1900년) 그 속에서 54,000여권의 경전과 문서가 발굴되어 장경동(藏經洞)이라 명명되었다.

이 석굴에서 발굴된 혜초가 다섯개의 천축국을 다녀온 견문록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 탐험가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962~1943)가 프량스로 가져가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단다.

 

                         2)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들에게 안내를 맡아준 이신(李新) 수석연구원(2007. 8. 26 촬영)

막고굴에 입장할 때는 카메라를 입구 사무실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석굴의 내부는 물론 입장한 후에는 일체의 사진 스켓치는 할 수가 없어 유감스럽지만 약간의 설명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막고굴에서 가장 큰 동굴인 16호굴에는 잘 보존된 천정화에 봉황과 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1300년전 당나라 초기에 조성된 328호굴에는 주불로 석가모니를 협시불로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시고 있는데 풍만하고 관능적인 아난존자상이 인상적이었다.

부처도 벽화도 없는 막고굴에서 가장 작은 석굴인 424호굴은 불심은 돈독하나 가난한 평민의 신자가 만든 것으로 보인다.

1,000년 전 송나라 때 조성된 427호 석굴에는 가름빈가가 음악을 주도하는 벽화가 있어 당시의 약기와 연주자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428호굴에는 벽면에 천불상을 만들어 붙인 장관을, 그리고 나체비천상도 있어 서양 누드화의 기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259호굴은 위진남북조 초기 북위시인 1,600년 전에 조성된 가장 오래된 석굴로서 반가사유상과 교가상을 모시고 있다.

 

당나라 중기에 조성된 237호굴에는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에 돈황의 상징인 반탄비파상으로 유명하며 이 석굴에서 우리는 신라인을 만날 수 있었다.

각국의 사신들 사이에 조우관(鳥羽冠)을 쓴 신라 왕자를 만날 수 있어 신라가 당과 교역한 사실을 중국의 변방에서 확인한 셈이다.

조우관을 쓴 삼국인은 237호뿐만 아니라 220호, 335호, 159호굴에도 있다.

 

 

3) 막고굴에서 가장 큰 미륵대불전 96호굴(2007. 08. 26 촬영) 

 

 당의 측천무후 시대(695년)에 조성한 96호의 미륵대불은 35.5m로 세계에서 세번째의 큰 불상이며 실내대불로는 으뜸이라고 한다. 

당 최성기인 1,200여년전에 조성된 172호굴의 불상은 청대에 와서 다시 조성한 것으로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시고 실내에서 악단과 무용수가 연주를 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는 건축도로서 유명하다.

173호실에서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우리나라 절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천수천바루문수보살은 처음으로 친견하는 영광을 이곳 막고굴에서 가지게 되었다.

148호실에느 15m의 대형 와불을 모셨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슬픈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각국에서 조문 온 사신들의 복장이 민족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안내된 133호실의 미륵대불은 당 현종 때 조성한 불상으로 남대불이라고 하며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부처님이란다.

 

4) 막고굴 주변에 조성한 백양나무슾(2007. 8. 26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