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글***/해외여행기

사진으로 보는 실크로드(4.난주·병령사)

是夢 2008. 12. 10. 10:58

사진으로 보는 실크로드(4.난주·병령사)

 

황하유역의 제일도시 난주(蘭州)

감숙성(甘肅省)의 성도인 난주시는 서안(西安)의 북서쪽 약 600km, 해발 1,510m 지점에 있는  황하유역 제일의 도시이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황하를 따라서 가늘고 길게 생긴 난주는 남쪽에 목란산과 북쪽에 백탑산을 사이에 두고 황하가 흐르고 있다. 2,200년전에 세워진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발달해 왔으며, 서역으로 들어간 현장법사도, 당태종이 티베트와 화친을 위해 애지중지하던 딸 문선공주를 변방 티베트왕에게 시집보낼 때도 이 난주에서 황하를 건너갔던 곳이다.

  

    1)황하에서 최초로 건설된 중산교(中山橋)(2008. 10. 28 촬영)

이 다리가 놓이기전에는 양가죽을 깁어 바람을 불어넣어 꽉 조여 만든 양가죽쪽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고 사람과 화물을 실어보냈다고 한다.

이 쪽배에 몸을 싣고 강을 건넌 문선공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중국을 통일한 대제국의 황제 이세민이 장족의 위세에 눌려 사랑하는 공주를 보내 화친의 손길을 내민 그의 심정은 또한 어떠했을까?  

그때의 문선공주와 당태종이 당한 수모를 모택동 주석이 분풀이라도 하듯 국민당에게 쫒겨 막다른 골목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티베트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던 날 티베트를 점령하여 중국에 편입시켜 버린 역사의 순환을 저 거칠게 흐르는 황토물은 아는지? 

서북공정과 티베트의 병합에서, 동북공정과 한반도와의 관계가 무었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한 인식을 해야남 한다.

 

 2)황하모자상(2007. 8. 24 촬영)

세계4대문명의 발상지를 만든 중국인의 자존심을 그 젖줄인 황하 변에 새긴 ‘황하 모자상’은 56개의 다민족 국가의 고심이 새겨져있다.

한족의 모습도 아니오, 그렇다고 흉노나 위글족도 아닌 여인상, 얼른 보면 서양여자를 연상케 하는 기이한 모습을 만들어낸 것 같다.

필립핀 마닐라공원에 있는 모자상이 가냘프고 관능적인 몸매의 필립핀 여인이라기보다는 풍만하고 매혹적인 스페인 여인상을 보고, 작품을 만든 작가가 서구에서 공부한 화가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30여년전의 일이 생각난다.

 

                                  

3)백탑산 정상에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낸 백탑(2008. 10. 28 촬영)

난주 시가지에서 보면 흰색의 탑이 우뚝솟아  남쪽의 목란산과 마주보고 있다하여 백탑산이라 하고 그 사찰을 백탑사라 일컬어지고 있다. 백탑에 올라서면 난주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해발 1,700m에 세운 백탑은 7각 8층탑으로 윗부분은 중국의 전통양식으로, 아랫부분은 인도양식으로 만든 중국과 인도의 문화가 혼합된 탑이다.

인도에서 징기스칸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으로 파견한 승려가 이곳에서 사망하자 그를 공양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회 답사다원들이 계단을 오르다가 가쁜 호흡을 조절하면서 난주시가지를 감상하고 있다.

 

 4)백탑사에서 바라보는 남주시가지 전경(08. 10. 28 촬영)

난주는 현재 인구 200만이 넘는 공업도시로 발달하여 고도답지않게 고층빌딩이 황하변에 즐비하며 공해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다.

 

5)백탑사 신도들이 스님의 인도에 따라 법회를 하고 있는 모습(2008. 10. 28 촬영)

중국의 절은 붐비는 신도들로 번잡스럽다.

굵고 긴 향을 피우고 정성스럽게 삼배를 올리느 신도들의 신앙심은 종교를 부정해온 공상당의 지배국가라는 의심이 들때가 있다. 법당에서 법회를 마치고 경내를 돌면서 부처님을 모신 곳마다 법회를 하는 광경이 이채롭웠다.

 

황하 최대의 유가협댐 상류  병령사(炳靈寺) 석굴

양자강 삼협댐이 건설되기전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댐이었던 유가협댐은 황하 상류이 절경을 담고 있다.

난주에서 남쪽으로 100km에 있는 중국 최대의 수력발전소인 유가협댐 상류에 병령사 석굴이 있다. 

황하는 그 이름처럼 강물이 누렇게 황색인데 이곳 유가협댐물은 맑은 청수를 가득하게 담고 있다.

험한 길을 1시간 30분 가량 달려와 나룻터에 도착하니 쾌속정 3대가 기다리고 있다.

낡은 배에 40명 회원이 분승하여 넓고 명경같이 맑은 물길을 가르면서 이색적인 주변 풍광을 즐기는 뱃놀이가 지친 여정의 피로를 풀어준다.

 

                                    1)아름다운 유가현댐의 물살을 가르면서 병령사로 가는 쾌속정(2008.10. 28 촬영)

댐주변의 경관은 상류로 갈 수록 거대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아 온다.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없는 황량한 암벽에 염소와 양들이 무리를 지어 풀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도 이채롭다.

 

                                   2)기괴괴한 봉우리 사이로 병령사를 찾아가는 회원들(2008. 10. 28 촬영)

 

                                                                3)오석으로 새긴 문화재 표석(2008. 10. 28 촬영) 

 '병령(炳靈)'아란 티베트어를 음역한 것으로 '십만불'의 뜻이라고 하는데, 즉 천불동, 만불동과 같은 뜻이다.

 석굴의 조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곳으로 보이는 석굴에서 '서진건흥원년'이란 명문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서기400년경 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북주, 수, 당시대에 활발하게 조성되다가 티베트에 함락되고 청시대에 민족분규로 많이 파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4)관능적인 몸매를 가진 보살상(2008. 10. 28 촬영)

병령사 석굴도 촬영을 금지하고 있으나 너무나 매혹적인 보살상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관리자의 눈을 피해 찍은 사진이다.

직벽 바위에 감실을 만들고 보살상을 새긴 후 채색을 하고 광배와 양쪽에 나무가지를 그린 걸작의 석상이다.  

 

5)대불을 배경으로 모델이 되어 준 라마승려(2008. 10. 28 촬영)

병령사 석굴중에서 당나라때 조성한 대불이 가장 크다.

대불과 그 주변의 동굴을 보수하고 있어 대불위에 있는 풍부한 불상군과 조성시기를 알 수 있는 연기가 나온 169굴은 볼 수가 없어 유감이었다.

라마승려 뒤로 보이는 대불은 높이가 30m나 되는 병령사 석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모델이 되어준 라마 승려는 간단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식인이었다.

 

                                                6)병령사 석굴이 있는 계곡(2008. 10. 28 촬영)

황화 상류의 지류인 병령사 석굴이 있는 계곡에는 상사, 중사, 하사로 나뉘는데 당 나라 이후에는 티베트가 지배하여 라마교가 풍미한 흔적이 불상과 벽화에 덧그림으로 남아 있다.

 

                                     

                                           7)병령사 입구서 석굴을 지키고 있는 남매바위(2008. 10. 28 촬영)

 

                                              8)민속품을 팔고있는 소수민족(2008. 10. 28 촬영)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순박하고 정감이 가는 웃음에 매료되어 양해를 구하고 담아온 현지인.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장터에서 본 듯한 우리와 너무나 닮은 모습으로 보아 우리 민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9)유가협 나룻터 풍경(2008. 10. 28 촬영)

병령굴에서 버스가 기다리는 나룻터로 돌아오다가 쾌속정 한대가 멈춰 섰다.

우리 배 선장에게 왜 섰느냐고 손짓 발짓으로 물오보니 모래톱에 얹혔나 보다면서 곧 따라 올거라고 하고는 뒤따르던 우리배가 앞질러 도착해 나룻터에서 기다렸다.

조금후 두번째 배가 도착했으나 모래톱에 걸렸다는 배가 궁금해 가이드가 선임 뱃사공에게 알아보라하니 핸드폰이 불통이라고 하면서 태평스럽게 있다가 조회장이 독촉을 하니 그제사  연료를 가지고 돌아가서 1시간이나 지나서야 2조 조원을 태운 배가 도착했다.

 연료가 떨어져 망망한 호수 한가운데서 연락두절의 상테에서 뱃사공과 의사소통도 되지않은채 고립된 회원들은 24시간 버스에 있을 때는 육지라는 안전성 때문에 두려움이란 전혀 느끼지 못했으나, 호수 한가운데서 50여분간의 고립무원은 견디기 어려운 공포를 느꼈다면서 땅을 딛고서야 안도를 한다.  

이번 여행에서 두번째 일어난 뜻밖의 사고는 중국인의 준비성 부족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일행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줄도 모르고 유가협 나룻터의 아름다운 석양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샷터를 눌린 것이 미안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