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나무 순례***/천연기념물 순례

영천 자천리의 오리장림

是夢 2008. 11. 23. 08:17

영천 자천리의 오리장림
천연기념물 제 404호
1999년 4월 6일 지정,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1421-1

홍수 막는 마을 숲, 영천 자천리의 오리장림

우리의 시골마을은 대부분 야트막한 산을 뒤로 두르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개천의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다. 이곳의 어려움은 개천을 다 스리는 일이다. 홍수를 만나면 한해의 농사를 망치고 때로는 삶의 터전까지 모두 한 번에 쓸어가 버린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거창한 토목공사로 물줄기를 돌릴 수 는 없었던 터. 그래서 옛 사람들은 나무를 심고 숲 을 만들어 다스렸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전쟁을 거치면서 이런 숲들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지만, 그 흔적들은 오늘날 마 을 숲이란 이름으로 이곳저곳에 조금씩 남아있다. 마을 숲은 지각 있는 양반이나 백성을 진짜 사랑하고 아 낀 목민관이 일부러 만든 것과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가꾼 숲이 있는데 대부분의 숲은 백성들의 노력 으로 이루어진 자생 숲이다. 대구 포항을 잇는 고속도로에서 북영천IC를 빠져나와 청송으로 들어가는 35번 도로를 잠시 달리면 영천시 화북면 면소재가 있는 자천리다. 오리장림(五里長林)이란 이름의 숲은 읍 소재지로 들어가지 직전, 도로의 좌우측에 펼쳐져 있다. 속칭 자 천 숲이라 불리는 이곳은 사람들이 한두 그루씩 심어서 만들어진 자생 숲이다. 천문대로 유명한 보현산에 서 시작한 고현천이 마을 앞을 휘감고 지나가는데 초승달 모양의 개울둑은 홍수 때마다 앞들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약 4백여 년 전 마을 사람들은 여기에 숲을 만들어 홍수를 막아볼 계획을 세웠고 하나 둘 심겨 진 나무는 개울둑을 따라 그 길이가 오리에나 이르렀다.

1999년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 조사된 자료를 보면 12수종이 자라고 있었다. 물가에 잘 자라는 왕 버들이 37주, 뒷산에 흔한 도토리나무(굴참나무)가 87주, 양반마을의 표상 인 회화나무 26주를 비롯하여 기타 느티나무, 팽나무, 풍게나무, 시무나무, 말채나무와 침엽수로서 은행나무, 히말라야시다와 소나무 및 곰솔 등 모두 282주이다. 그러나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여러 그루의 나무가 피해를 입어 다시 심는 과정 에서 10그루의 은행나무와 벚나무, 단풍나무 등 다른 수종도 섞여 있다. 그런데 전통 마을 숲에 들어가서는 안 될 수종이 있다. 바로 2~30년생 히말라야시다가 바로 그것. 20여 그 루가 줄지어 심겨진 것은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주어도 궁합이 맞은 어울림이 아니다. 이렇게 숲을 이룬 나무의 나이는 왕버들과 회화나무가 가장 많은데 약 350살짜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은 30~100년 정도의 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개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늙은 왕버들이 숲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완전히 누워버린 왕버들이 있는가하 면 죽음을 맞이한 채 그대로 서있는 나무도 역시 왕버들이다. 수많은 노거수들 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나무 가 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서로 맞닿아 연리(連理)를 만들고 있는 나무다. 김건모의 노래 제목 ‘잘못된 만남’처럼 수종이 달라 영원히 완전한 한 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살아가기 어려운 숲 의 나무들의 처지를 그들을 통하여 몸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우리나라 마을 숲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숲도 제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영천과 청송을 잇는 자동차도로가 숲의 가운데를 관통하여 숲을 동서로 갈라놓았다. 이 공사로 적어도 몇 십 그루 의 고목들이 잘려 나갔을 터이다. 다음은 1959년 한반도의 남부를 초토화 시킨 태풍 사라호 때 숲은 반 이 상이 사라져 버린다. 1972년 바로 옆에 자천중학교를 설립하면서 숲의 일부가 학교 운동장이 되었고, 지금 남아있는 숲의 길이는 오리장림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1km 남짓하다. 숲 속 여기저기 쉼터 의자가 놓여있고, 음수대에 간이 화장실까지 마련되어 있다. 휴가철에 몰려오는 피서 객의 편의를 위함이지만 이로 인해 한여름 내내 숲은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또한 숲의 한 가운데를 가 로 지르는 봉림교 입구에는 음식점을 겸한 제법 큰 규모의 상점이 일 년 내내 영업을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영예를 부여한지도 7년째, 하지만 그 품격에 맞는 대접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