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나무 순례***/천연기념물 순례

문경 존도리의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425호

是夢 2008. 10. 13. 20:23

문경 존도리의 소나무
천연기념물 425호 2000년 10월 13일 지정
경북 문경시 산양면 존도리 22

갑자사화의 아픔을 함께한 학 모양 소나무

연산군 10년(1504)년 3월부터 진행된 갑자사화 피바람의 막바지인 10월 4일이었다. 임금은 ‘대사간 강형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르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죽은 생모를 왕후로 복원하고 신주를 모시는 일에 반대하고 나서는가? 마땅히 중벌을 받아야 한다. 단근질로 심문한 뒤에 백관을 늘어세운 앞에서 능지 처참하고, 그 자식은 모두 참형하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강형은 아들 셋과 함께 졸지에 죽 임을 당한다.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부인은 한 달 동안 음식을 끊고 울다가 죽었다.

온 집안이 풍비박산되자 강형의 맏아들 강영숙의 부인 익산 이씨가 집안을 추스른다. 시신을 수습하여 상 주시 이안면 양범리에 묻고, 다섯 아들을 데리고 이곳 존도리로 내려온다. 그러나 그녀가 피눈물을 흘린 세 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복권되었으며, 드디어 중종 28년 (1533)에는 셋째 아들 강온이 의정부 사인(舍人)이라는 높은 벼슬에 오른다. 임금의 정사를 돕고 의정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정4품의 권력의 실세가 된 것이다. 억울하고 분함의 조금이나마 풀린 셈이다.

강온은 어린 나이에 멀리 이곳까지 쫓겨 오는 비극의 현장을 너무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지난 아 픈 과거는 모두 떨쳐버리고, 사인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높이 도약할 큰 뜻을 가슴에 품었다. 소나 무 한 그루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고 엄마의 한을 모두 담아서 땅 속에 묻어버리고 싶었다. 이 렇게 하여 그는 지금의 이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사인송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무 의 나이는 약 500년이 되는 셈이다.


나무가 자라는 곳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경북 안동에서 상주를 잇는 4차선 34호 국도예천을 거쳐 용 궁을 지나치면 바로 ‘산양‘이란 곳이 있다. 여기서 빠져나와 충북 단양으로 가는 975호 도로로 접어든다. 1km남짓 잠깐 올라가면 오른쪽에 집 몇 채가 있는 작은 마을이 있다. 나무는 도로에 붙어 있는 3채의 집 뒤 에 있다. 도로에서 보이지 않고 들어가는 길도 좁은 골목길 밖에 없다. 이렇게 주변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 은 시골 마을의 구석에 자라지만 나무의 빼어난 자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고도 남는다. 거의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누운 줄기가 2m쯤 올라가서는 굵은 가지와 잔가지를 적당히 섞어가면서 이리저 리 뻗치고 있다. 가지는 버들처럼 아래로 조금씩 늘어져 멋스러움을 더한다. 맨 아래 가지는 혼자 버틸 수 도 없어서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다. 나무는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모양이지만 서쪽에서 동쪽으로 약간 올 려다보는 자세로 감상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마치 날아오를 준비를 끝낸 한 마리의 학이 막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를 자세로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하 다. 지금 거의 죽어가지만 한창 때의 천연기념물 355호 전주 곰솔을 흔히 학 모양과 비유하였는데, 이 소나 무가 더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 5백년이란 세월은 나무에 녹아 있는 강형 일가의 한(恨)도 울분도 모두 씻 어 주고도 남겠으나, 오늘날의 나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비극의 역사를 반추해 내기는 어렵다. 높이 7.3m 이며, 가슴높이 둘레는 2.5m, 가지 뻗음은 동서 16.1m 남북 22.2m로서 웅장함이 아니라 아담함이 나무의 매력이다.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고, 10년마다 한 번씩 무당 을 불러 별신굿을 따로 크게 벌리는 행사를 해 온다고 한다. 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평해송(平海松)이며 강 온이 심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 익산 이씨가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나무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위쪽 가 지가 말라 죽어가고 있다. 생명이 다하기 전 급히 소개하고자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