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강계평야를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았다. 자라는 장소가 높직하고 주변의 수천 평이 잔디밭으로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나무는 한층 돋보인다. 우리나라 230여 군데의 천연기념물 중에 이 나무만큼 후한 대접을 받는 나무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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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최고의 환경에서 늘그막이 행복한 나무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5.0m, 가슴높이의 둘레가 3.8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8.9m, 남북 20.3m이다. 수종은 곰솔, 바닷바람에 맞서서 삶을 이어가려는 억센 잎과 강한 자외선에 피부가 까맣게 타버린 피부가 트레이드마크인 바로 그 나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곰솔에서 다가오는 느낌은 남성적이라면 이 곰솔은 반대로 여성적인 느낌이다. 수많은 가지를 뻗으면서 능수버들처럼 아래로 늘어짐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가지의 끝부분이 다시 하늘로 향하여 솟구치는 모습이다. 나무로서야 광합성을 위한 햇빛 받기 본능이겠지만 우리의 눈에는 매력의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조금은 긴 머리의 끝을 바깥으로 웨이브를 넣은 여인의 머릿결을 쳐다보는 것 같아서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곰솔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가까이 가서 줄기를 만져보면 피부가 곱지 않다. 거북등 조각이 다른 나무보다 커서 거칠어 보인다. 높이 1m정도에는 양손을 감싸 쥐고도 한참 남을 제법 굵은 혹이 하나 달려 있다. 어찌 보면 탯줄을 잘못 자른 배꼽과 그대로 닮았다. 이를 두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나 만들었다. 익산시청 자료로 각색을 해보면 이렇다. 옛날 이 마을에 유난히 큰 배꼽을 가진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한다. 시집간 첫날밤에 배꼽을 보고 놀란 신랑은 참지 못하고 신부를 쫓아낸다. 소박맞고 친정으로 돌아온 신부는 마을 근처 연못에 몸을 던져버린다. 그 뒤 이 연못 근처에 커다란 배꼽이 달린 한 곰솔 한그루가 자랐다는 것이다. 내가 두 번째 찾아간 2004.09.30 배꼽에는 잘 익은 감하나가 얹혀있고 촛농이 흘려내려 있다. 민초의 절박한 어려움을 빌고 간 흔적이다. |
또 다른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풍수지리에 밝은 길손이 이곳이 명당자리라고 하여 심었다고 한다. 이 전설을 기준으로 임진왜란 발발연도인 선조25년(1592)부터 계산해 본다면 나이는 약 4백년 정도이다. 나무가 자라는 곳은 전북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 수원 마을이나 충남 강경읍 채운동과 거의 경계에 있다. 매년 섣달그믐이 면 양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함께 보호하여 오늘에 이른다. 물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행사는 없어져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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