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이정웅 숲해설가

[스크랩] 유년의 추억이 깃든 살구나무

是夢 2007. 3. 27. 07:20


 

 

 살구나무(두류공원)

 

 홍자두(삼익뉴타운)

 

시골서 자라든 우리 집 뒤 안에는 큰 살구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 나는 그 열매의 새콤달콤한 맛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 해 지금은 은퇴한 형님 내외분이 살고 있지만 처음에 살던 좁지만 내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 든 그 집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장독대와 약간의 텃밭이 있어 어머니는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긴 겨울밤 배가 출출할 때에는 그 곳에 묻어 둔 물김치독에서 새콤하면서도 시원한 무를 꺼내 주거나 얼음이 둥둥 뜬 김치 국물을 마시게 했으며, 또한 식은 밥이라도 남아있는 날이면 잘 익은 배추김치를 가져 오셔서 그냥 쭉쭉 찢어 숟가락 가득 걸쳐 고픈 배를 채워 주기도 했다. 살구나무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 얼굴이다.

그러던 어머니가 어느덧 여든 네 살이 되셨고 지금은 중풍으로 병원에 누워계신다.

마음속으로는 늘 잘해 드려야 할 텐데 하지만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에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고 한 달에 한 두번 문병가는 것이 고작이다.

살구나무에 대한 이러한 나의 속내를 알 리 없겠지만, 아내 역시 살구꽃에 대한 또 다른 어떤 추억이 있는지 우리 집 식탁 옆 벽에는 이원수 님의 ‘고향의 봄’을 적은 작은 액자가 걸려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 꽃 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 그립습니다. /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 파란 들 남쪽에서 /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 춤추는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소년기에 즐겨 부르든 노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어렸을  때와는 달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요즘 아이들은 살구의 새콤달콤한 맛을 모른다.

나 역시 동네시장 좌판에 놓인 살구를 사 먹어 보았으나 옛날 맛이 영 아니었다.

따라서 살구는 한동안 내게 멀어져 있었다.그러다가 나무 심는 일을 맡고 보니, 시내 몇 곳의 왕벚나무 가로수에 대한 많은 말들 -많은나무 중에서 하필이면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을 심느냐, 꽃이 핀 일주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해에 약해 가로가 지저분하다- 는 등 시민들의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가로수를  캐내고 새로 심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또한  일본을 상징한다 해도 원산지가 우리나라의 제주도인 이상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많이 고심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심지 않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어 실제 내가 설계에 관여하거나 할 수 있는 경우에는 많이 심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구청장이나 군수는 지나치게 왕벚나무를 좋아해 특히 수성구의 경우는 수성못 가에 있던 울창한 포플러 숲을 일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벚나무로 교체했다. 세월이 흐르니 그 자리에 포플러가 있었던 사실도 점차 잊혀지고 이제는 왕벚나무의 화려한 자태가 또 다른 풍경으로 자리 잡아 유원지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으나 한마디로 아쉽다.

또한 모든 사안에 다 장단점이 있지만 경관(景觀)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범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 같다. 뿐만 아니라,  일시에 흐드러지게 꽃이 피는 왕벚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존 나무를 없애거나 안 심는 것만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찬반이 극명한 시민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살구나무와 홍자두를 왕벚나무의 대체 수종으로 추천했다. 살구나무는 우리 같은 장년층에는 향수가 깃들어 있는 나무일 뿐 아니라, 꽃 피는 시기가 왕벚나무보다 다소 빨라 삭막한 겨울을 지낸 사람들에게 일찍 봄소식을 전해 주고, 꽃이 달리는 양이 왕벚나무에 뒤지나 꽃의 색깔도 비슷한 점이 있으며, 홍자두는 공해를 이겨내는 힘이 왕벚나무 보다 강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나무의 모습이 변함없고 오히려 약간 붉은 색을 띠는 잎의 관상가치는 왕벚나무 보다 낫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살구나무 묘목을 재배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구입할 수 없고, 줄기가 곧은 나무와 달리 꾸불꾸불하게 크기 때문에 가로수로는 부적합하나 공원의 풍치수로는 심을 만해 두류공원에 있는 살구나무의 열매를 따서 묘목을 대량 생산하여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거나 공원 등지에 심도록 했었다.

반면에 홍자두는 조경수로 개발되어 시중에 거래되고 있어 남구 봉덕동에는 당시 이동춘 계장이, 달성군 구지면 일부 구간에는 달성군의 김희천 계장(현 대구시 산림담당)이 가로수로 심었다. 그 후 기회 있을 때 마다 현장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니 뿌리가 얕게 뻗는지 잘 넘어지는 것 같아 바람이 센 곳에는 심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다. 그러나 달성군의 경우 꽃이 핀 모습을 보고 군수로부터 칭찬을 들었다고 해서 권장한 나로서도 흐뭇했다. 지하고(地下高, 지면에서 첫 번째 큰 가지까지의 높이)가 다소 낮은 것이 흠이나 개화기나 꽃 피는 형태가 왕벚나무와 비슷해 대체수종으로 보급이 확대될 수 충분히 있을 것 같다.

2001년 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벽천(壁泉) 동편에 세 그루 살구나무를( 김장길, 김종학, 나, )파동 포장에서 가져 와 심었다. 어느 정도 자라 꽃이 피면 이른 봄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즐거워 할 것이다.

나무가 집단적으로 자라는 곳을 송림(松林)이라하지만 살구나무가 집단으로 심긴 곳은  행림(杏林))이라하지 않는다.  옛날,중국에 동봉(董奉)이라는 의사가 병을 잘 고치기도 하였지만 마음씨가 너무 착해 중병(重病)에 걸렸어도 그가 가난한 사람이면 치료비 대신 5그루의 살구나무를 심게 하고, 가벼운 환자 일 경우에는 1그루의 살구나무를 심게 해, 풀 한 포기나무 한 그루 없던 민둥산을 푸르게 하여 홍수를 막아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열매로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이후 행림은 박애정신이 투철한 의사들을 일컫는다. 또 다른 이야기는 역시 중국에서 전해 오는 것으로 과거시험을 합격한 인재들을 나라에서 축하해주는 연회를 살구나무꽃동산에서 열었다 하여  급제를 상징한다고 한다. 3월 23 일 두류공원에는 살구꽃이 만발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출처 : 나무이야기,꽃이야기
글쓴이 : 이팝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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