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이정웅 숲해설가

[스크랩] 청도 매전면의 처진 소나무

是夢 2006. 10. 16. 22:50

 청도 매전면의 처진 소나무

 수관

  줄기


각박한 세상을 벗어나 누구나 전원생활(田園生活)을 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세상일과 단절할 수 없는 형편도 그렇지만 알맞은 터를 고르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 고향에서 유년(幼年)은 물론 초, 중학교까지 함께 보낸 소위 불알친구 정(丁)군이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청도 매전에 새둥지를 틀었다. 진작 한 번 가보기로 했으나, 서로가 바빠 미루어 오다가 4년차인 오늘에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찾아가는 우리와 달리 그는 시내에 있었다. 며느리가 해산(解産)해 병원에 왔으나 곧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일행은 그가 돌아올 시간까지 별미(別味)인 청도 매운탕을 먹기 위해 식당을 들렸다.

주말인데도 한산했으나, 밥을 먹고 있는 중에 몇 팀의 데이트 족이 역시 별미를 즐기기 위해서인지 식당을 찾아 주인이 기뻐하는 것 같았다. 도착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매전을 향했다. 20번 국도를 타고 면소재지를 가는 초입(初入) 길가에 내가 보고 싶어 하던  처진 소나무가 보였다.

차를 세우게 하고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려 일명 유송(柳松)이라고도 하는 처진 소나무에게 다가갔다. 줄기를 만져보니 손바닥을 통해 감지되는 기운(機運)이 가슴 뛰게 했다. 비록 쇠로 울타리를 쳐 놓았으나 어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먼지와 소음으로 고통 받고 자라고 있어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이 나무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관할 청도군도 문화재 행정을 총괄하는 문화재청도 아닌 영국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더욱 가슴 아프다. 천연기념물 제295호로, 소위 “청도 매전면의 처진소나무”로 불려지는 이 나무의 수령은 200여년, 수고(樹高)는 14m정도이다. 또한, 가지가 뻗은 반경은 동쪽이 5.5m, 서쪽이 4.8m, 남쪽이 2,9m, 북쪽이 6.2m이라고 한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자, 같은 품격의 천연기념물(180호)로, 가지가 옆으로 처진 형태로 자라는 운문사 소나무와 달리 이 나무는 아래로 처진다.

이러한 희귀한 소나무는 이곳 이외 울진에도 한 그루 더 있으나, 이 나무처럼 완벽하게 늘어진 모양으로 자라는 나무는 없다. 따라서 일찍부터 식물의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열대우림지역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누비며 유전자원을 찾고 있는 영국(英國) 정부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가져갔는지 또 가져가서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조경용으로 개발했다면 미국이 북한산에서 채집해 가져가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미국 조경수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킴스 라이락”과 같이 대박을 터뜨릴 것이 분명하다. 농촌진흥청이나 산림청 등 우리나라에도 식물관련 연구소나 기관이 많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도 감 연구소, 복숭아연구소, 잠사곤충연구소, 등 단위 식물이나, 품목별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구성원의 인적자원이 부족해 해서 그런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못 내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세계적인 화훼수출국 네덜란드가 우리나라의 울릉도산 섬말나리를 가져가 양질의 백합꽃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런 보도를 접할 때 마다 식물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쉽기 그지  없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고 하니 차제에 이공계인 유전학계통을 공부한 사람들을 이런 분야에  집중 배치하여 일자리도 만들고, 식물의 유용성도 개발하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얼마 전 전국에서 유일하게 세금 내는 나무 즉 예천의 석송령(천연기념물  호)의 후계목을 길러 출향인사들이 사가게 함으로 출향인(出鄕人)들은 그 나무를 통해 고향생각으로 향수(鄕愁)를 느끼고 판매대금은 군(郡)의 수입으로 재정에 보탰다는 보도가 있었다.

매전의 처진소나무는 석송령보다 더 조경적인 가치가 있으니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상품화할 수 있다고 본다. 군 당국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세계의 다른 나라 또한 그랬을 것이지만 우리나라도 먹고 사는 데 바빠 우리문화를 챙기고 가꾸는 데  소홀했던 것은 비단 나무문화 뿐이 아닐 것이나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외부에 많이 알려야 한다. 그 것이 축제인 것은 좋지만 소모성 경비라는 지적도 있으니 우선 손쉽게 외지인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시군의 홈페이지나 도로표지판, 관광안내도 등도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매전의 처진소나무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라는 곳이, 문화재청 자료에는 동산리 146-1번지로 되어 있으나, 청도군의 홈페이지에는 151-1번지로 되어 있어 어느 것이 정확한지 방문자를 혼란케 하고 ‘도래솔’을 ‘도리솔’로 또한 ‘고성(固城)이씨’를 ‘고성(高城)이씨’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비록 단순한 것 같지만 이런 작은 오류(誤謬)를 보고 군의 다른 기록에 대해서도 불신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안내판조차도 퇴색하여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두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독특한 모양새를 자랑하는 소나무치고 거기에 걸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자료를 정리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내외를 보니 좋은 환경에서 무 농약 채소만 먹고 뒷동산을 오르는 등 운동을 부지런히 해서 그런지 얼굴들이 매우 맑았다.

점심 때 먹은 반주(飯酒)로 거나해진 우리는 사발무지를 놓기 위해 동창천으로 갔다. 맑은 곳에서만 산다는 다슬기가 있다는 강에서 준비해간 떡밥을 으께 항아리에 넣고 고기가 들어가는 동안 모처람 한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이름을 부르자 누군가 이제 손자까지 보았는데 이름을 불러서야 되겠는가? 하고 이의를 제기 하여 각자 호(號)를 부르기로 했다. 나는 죽정(竹庭), 다른 한 친구는 직태(稷苔)라는 호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또 다른 두 친구는 호가 없어 매전에 정착한 친구에게는 매천면의 매(梅)와 집이라는 헌(軒)자 즉 매전면에 집을 짓고 산다는 뜻으로 매헌(梅軒)이라 하고, 아명(兒名)이 ‘돌이(石伊)’인 그에게는 돌 자를 그대로 살려 석정(石亭)으로 지어주었다.

전원으로 돌아간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기쁨도 컸지만 처진 소나무를 어루만져 본 감회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하루였다.

         

                           

출처 : 나무이야기,꽃이야기
글쓴이 : 이팝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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