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글***/산행기

성인봉에서 쪽빛 동해를 보다

是夢 2006. 6. 8. 09:52
 

성인봉에서 쪽빛 동해를 보다

정시식(공무원 교육원장)

  눅눅한 습기가 바지가랭이를 휘감는 가파른 등산길을 숨 가쁘게 오른다. 산자락을 어슬렁거리면서 몸을 풀 여유도 없다. 산자락이랄 것도 없는 도랑 가를 비집고 겨우 터를 잡은 집들 사이를 벗어나자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벼랑길이 가쁜 숨을 토하게 한다. 안개구름이 낮게 깔려 발밑의 바다도 숨겨 놓고 보여주지 않는 심술을 헤치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길에는 폐허가 된 집도 있고 아직은 손길이 닿는 듯한 손바닥만한 채전도 보인다.

   인간의 간섭을 벗어난 숲 사이를 헤집고 쉬엄쉬엄 올라도 목줄을 타고 내리는 땀으로 웃옷이 흥건하게 젖었다. 배 멀미로 성인봉 등산을 포기했던 아내가 새벽부터 서둘러 힘든 길을 잘 오르고 있다. 체력이 강건하여 산을 오르는 실력이 나보다 훨씬 나아 오늘도 앞장을 서고 있다.

  새벽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부지런한 산꾼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서 처음 가는 앞길을 묻기도 하고 격려를 받기도 하면서 한 시간 반 남짓 가파른 능선을 올라서니 해발 500고지의 평평한 길섶에 산중 매점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아이스박스가 있고 그 옆에는 간이 의자와 탁자가 마련되어 있다. 주인아주머니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서 긴 나무기둥 두 개를 엮어 만든 의자에 앉아 미숫가루 한잔을 청하였다. 제법 큰 플라스틱 잔에다 미리 타둔 미숫가루를 한잔 가득히 부어 주기에 인심 좋은 주인이구나…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 입에 갖다대고 마신 미숫가루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입안을 적시고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시원스러운 냉기가 온 몸의 열기를 빼앗아 가 소름이 오싹 끼친다. 주르르 흐르던 이마의 땀이 뚝 그쳐버렸다. 난생 처음 맛보는 시원스러운 미숫가루 맛이다. 이렇게 맛있는 미숫가루를 만들기 위해 주인은 무거운 얼음을 이곳까지 저다 올리는 공든 땀을 흘렸고, 나와 아내는 새벽길을 나서 성인봉을 오르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정성을 들였기에 맛볼 수 있는 것이리라!

  이곳이 저동과 도동에서 올라와 만나는 합류점이요,  저동 쪽의 봉래폭포로 가는 갈림길이다. 젊은 부부가 손잡고 땀을 흘리면서 우리 뒤를 따라 왔기에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는 일어섰다. 여객선을 타고 도동항구로 들어오면서 가장 높은 산으로 보이는 관모봉(冠冒峯 561.7m)의 우측 허리를 끼고돌아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온 길보다는 가파름이 덜하다. 그늘을 지우면서 듬성듬성 들어 선 활엽수림 사이로 섬바디가 마치 사람이 가꾼 듯 밭을 이루면서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전주에서 온 학교 선생님 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전망대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도 동해의 바다는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아 그 신비를 감추고 있다. 

  사과와 복숭아로 목을 축이고는 900m정도 되는 능선에 오르니 거기에도 냉커피와 칡차와 같은 몇 가지 음료수를 팔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 커피를 즐기는 아내에게 냉커피 한잔을, 나는 아쿠아리스로 갈증을 해소하였다. 이곳은 섬 남쪽에 있는 통구미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곳이다. 성인봉까지는 700m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라 다시 정상을 향했다. 상록활엽수인 동백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 만병초 등이 섬조릿대와 털머위를 바닥에 깔고는 솔송나무, 너도밤나무와 함께 숲의 상층부를 구성하면서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햇볕을 가렸으나, 이제는 키 작은 주목, 화솔나무가 앞길을 트고 있다. 한 번 더 이마의 땀을 훔치고 조그마한 돌무더기 같은 봉우리를 딛고 올라서니 성인봉 표석이 우리를 맞이한다. 해수면에서 출발하여 983.6m의 높이에 다다른 것이다. 일곱시에 출발하여 열한시에 도착하였으니 세시간이 걸린 셈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아직도 구름이 동해의 신비를 보여주지 않고 숨겨두었다. 그러나 포항쪽으로 조그맣게 짙푸른 바다를 들어내어 우리가 어제 들어온 뱃길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연중 맑은 날씨가 54일정도 밖에 되지 않아 좀처럼 바다를 보이지 않는다는 성인봉의 심술이 우리 부부에게는 자비를 베풀었나 보다. 대학시절 여름방학, 아촌(芽村 李參雨)과 함께 울릉도를 탐방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루어 두었다가 30수년이 흐른 이번 휴가에 아내와 함께 첫발을 딛는 감회가 크다. 더욱이 동해의 영봉인 성인봉에 올라 쪽빛처럼 푸르른 동해의 신비를  바라보는 가슴이 울렁인다. 청명한 날, 서쪽을 향해 수평선을 건너다보면 강원도의 오대산이 은은하게 보이고 동남쪽을 향해 내려다보면 독도가 완연히 보인다고 하는데 수면을 가리고 있는 구름은 이 비경을 숨겨 둔 채 비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독도가 있는 곳은 저 방향이고 강원도는 이 방향이겠지 짐작하면서 구름으로 가린 사방을 둘러본다. 신라시대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이후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공도정책을 쓰기도 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하여 현지 상황을 답사케 하고 그의 건의를 받아 들여 공도정책을 철폐함과 동시에 개척령을 반포하여, 1883년에 첫 개척민 16호 54명이 이주한 이래 115년이 된 오늘에는 1만 1천여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면서 동해에 떠 있는 어업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국토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면서 ‘聖人峯’ 표석을 집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인봉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리분지 쪽으로 가파른 하산 길을 300여m 내려오니 쉼터 옆에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도동에서 성인봉까지 오르는 길에는 먹을 물은커녕 손 한번 담구어 더위를 식힐 물조차도 보지 못하다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에 머리를 대고 씻는 시원스러운 맛이 성인봉 나들이의 일미이기도 하다. 더위가 가시도록 잠시 쉼터에 앉아 등산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쉬엄쉬엄 내려오니 어제 대구에서부터 동행한 계성고등학교 선생님 일행과 경북관광 안내원을 만났다. 이들은 자동차로 서쪽에서 섬을 돌아 나리분지를 거쳐 알봉분지까지 와서 성인봉 등산을 하고 도동으로 내려가는, 우리와 반대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하산길은 매우 급한 경사가 되어 굵은 밧줄로 손잡이를 만들어 등산객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있다.

  지프차와 소형 승합차가 성인봉 등산객들을 내려놓는 곳에 도착하여 맑은 샘물 한바가지를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가, 아내의 손을 잡고서 매우 호젓한 찻길을 따라 내려가니  울릉도의 민속자료로 보존하고 있는 투막 집에 닿았다. 처마 끝을 따라 바람막이를 하여 마치 회랑을 만들어 부엌과 마루, 방으로 이어지는 울릉도의 바람과 추위를 막기 위한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옛것이 사라져버려 한 세기 앞의 것도 찾기 힘 드는 세상에 그래도 투막집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울릉도민들의 넉넉한 마음씨에 고개가 숙여진다.

  울릉도 원산으로 유명한 섬백리향의 자생지는 사람의 발길을 막기 위해 철망을 둘러 보호시설을 하였으나 생육상태가 좋지 않아 매 마른 잡초만 보여 아쉬운 마음으로 나리분지로 향했다.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가 무거웠으나 울을도에서는 가장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난 호젓한 길을 아내와 둘이서 걷는 기분은 섬백리향 만큼이나 상큼하였다. 숲 속의 짙은 그늘 너머로 제법 넓은 들이 나타났다. 띄엄띄엄 몇 채의 집이 한가롭게 낮잠을 자는 듯 졸고 있고 밭에는 가지가지 약초들이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를 이루는 나리분지다.

  “나리분지에 나리가 하나도 없네.”하면서 실망하는 아내의 말을 들으니 그제서야 나도 분지 이름이 ‘나리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어슴푸레 짐작하게 되었다. 그 옛날에는 나리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나리꽃 동산이었기에 ‘나리분지’라고 자연스럽게 불려진 이름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밭으로 개간하여 약초를 재배하는 농경지로 변모하였으니, 요즈음 시각으로 본다면 심각한 환경파괴가 이루어진 셈이다. 들판의 집들도 농가에서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으로 변신하였다. 옛 나리분지의 운치를 흉내 내어 길가에 나리꽃을 심어둔 음식점 평상에서 지친 다리를 쉬면서 점심을 먹고는 놀러 나온 마음씨 좋은 바닷가 아저씨 덕분에 마을버스가 기다리는 천부리까지 봉고를 얻어 탈 수 있어 다리 품삯을 덜었다.

  도동을 잇는 섬목나루까지 가는 만원 버스에서는 어느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인사를 건너면서 성인봉 등산에 힘들지는 않았느냐, 일주도로가 다 되지 않아 여행에 불편을 끼쳐서 미안하다면서 이해해 달라는 등 외지인인 나에게 낯선 지명이랑, 섬의 풍습이랑, 차창 밖의 풍경을 설명해 주는 친절에는 울릉도민들의 훈훈한 인정과 순박함, 그리고 보이지 않게 풍겨나는 당당한 애향심을 보았다. 육지를 동경하면서도 울릉도의 자존을 지킬 줄 아는 울릉도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다음 휴가 때는 이곳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민박계획을 세워서 다시 찾으리라……

 

199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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