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박상진 교수 나무 해설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

是夢 2008. 8. 10. 07:29

천연기념물 일람표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 천연기념물 제176호
소재지 :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산2-1 1966.01.13 지정

5월이 무르익을 즈음, 꾸불꾸불 용틀임 등나무에는 연보라 빛 등꽃이 활짝 핀다. 인공으로 만든 공원의 해가림 틀에서나 만나는 등나무와는 달리, 숲 속의 계곡 전체가 등꽃으로 뒤덮이는 곳이 있다. 멀리 부산 금정산 중턱,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범어사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절의 유래부터 찾아가 보자. ‘금정산 산정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황금색 물이 항상 가득하였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金井)이란 산 이름과 범어(梵魚)라는 절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범어사의 등나무는 절 옆을 흘러내린 얕은 계곡부에 무리를 이루어 자란다.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그런 계곡이 아니라 사람 키를 넘는 커다란 바위가 온통 뒹굴고 있는 곳이다. 어렵사리 돌무더기 사이사이를 헤치고 뿌리를 내렸다. 평범한 덩굴나무로 다른 나무에 묻혀 살던 등나무가 꽃이 만발할 때 비로소 사람들의 눈에 띈다. 이곳의 등꽃은 수백 그루가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서 이어 핀다. 마치 전설처럼 금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와서 노닐고 있는 착각에 빠질 만큼 범어사의 등나무 꽃구름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 계곡의 다른 이름은 등운곡(藤雲谷)이다. 등꽃이 한창일 때의 모습이 여름날의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언재부터 이곳에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심은 것인지 자생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는 있다. 고려 때 송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이란 책에는, 한지를 만드는 원료서 닥나무 이외에 등나무 껍질도 흔히 이용하였다한다. 고려를 거쳐 조선에 들어오면서 절의 중요한 수입원으로서 스님들의 손으로 종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 등나무도 한지의 원료로 쓰기 위하여 일부러 심은 것이 널리 계곡에 퍼졌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금 자라고 있는 등나무의 나이는 100여년 남짓한데, 아마 베어 쓰기를 반복한 탓일 것이다. 등나무가 퍼져 있는 면적은 5.6ha, 크고 작은 500여 그루가 자란다. 지름은 최대 약 140cm, 길이는 15m에 이르는 등나무도 있다.

오늘날 이렇게 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나무 나라에서는 말썽꾸러기다. 원래 등나무는 숲 속에서 공생의 원칙을 지켜주는 나무가 아니다. 다른 나무의 줄기를 휘감아 올라가는 것이 그의 특기다. 이용만 하고 자라면서는 줄기를 옥죄어 양분이 오르내리는 것을 방해한다. 꼭지까지 타고 올라간 다음에는 나뭇잎을 완전히 덮고 광합성 공간을 빼앗아 버린다. 한 마디로 저 혼자 살겠다는 얌체나무다. 나무의 이런 특성을 옛 선비들은 멸시의 대상인 소인배와 같다고 생각하여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그래서 집안에는 잘 심지 않았다. 이곳 범어사의 등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해 주었더니 주위의 다른 나무들을 모두 뒤덮어 버렸다. 할 수 없이 몇 년 전, 너무 심하게 뒤덮고 있는 등나무를 잘라주어 같이 살도록 조치하여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나무를 뒤덮어 버릴 것이다. 배은망덕은 인간세상의 일만은 아니다.

오늘날 범어사를 올라가는 길에서는 등나무 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돌무더기를 해치고 숲 속으로 잠시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다. 나무의 특성은 얄밉지만 한창 만개하였을 때 범어사등나무 꽃의 아름다움은 흔한 표현대로 ‘가히 환상적‘이다. 등운곡이란 명성도 살리고 천년 고찰 범어사의 지나온 세월의 일면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등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sjpark@knu.ac.kr>

찾아가기
2003년 5월5일 어린이 날, 이제 어린이가 다 커 버린 자식을 가진 장노년들에게는 쉬는 날이라는 것 이외에는 의미가 없다. 오랫동안 별러오던 범어사 등나무 알현을 위하여 새벽 6시 동대구 출발 무궁화에 몸을 실었다. 부산역앞 지하철역에서 범어사 역까지는 약 40분 거리 한참을 가야한다. 역 이름만 보아서는 바로 옆에 절이 있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버스를 바꾸어타고 산속으로 한참을 들어가야한다.

돌아오는 길에 부산역앞에서는 얼마남지 않은 부처님 오신날을 즈음하여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하얀 머리칼을 무기로 무의탁 노인 행세를 하면서 줄을 섰더니 군말없이 점심 한끼를 제공한다. 맛있게 먹고 돌아서는 뒤통수가 따가웠다. 불우 이웃돕기 남비에 금 만원을 넣고 서야 마음이 편하였다.

GPS 좌표 : N 35°16′49.3″, E 129°04′24.4″ 고도 296m
교통 : 고속버스터미널→범어사 지하철역→금정산→범어사 앞 계곡
방문정보 : 금정구 문화공보과 ☎ 051-519-4061
▒▒ 글, 사진 | 박상진 (경북대학교 임산공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