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나무 순례***/대구 보호수 순례

동구 지묘동 배롱나무/보호수 2-17

是夢 2007. 8. 5. 12:32

동구 지묘동 배롱나무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종 526번지

보호수 2-17(1999. 12. 16 지정), 5본

관리인 정보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526번지 신숭겸장군유적관리소 소장 정남용

소유자 정보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526번지

 

 1607년 신숭겸 장군이 돌아가신 이 자리에 단을 쌓고 다섯 그루의 배롱나무를 심었다.

/2007. 07. 31 촬영

 

  이 곳은 서기 927년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 경주를 침공하여 포석정에서 놀이를 하던 경애왕을 죽이고 회군하던 중 신라의 지원요청을 받은 후구려 왕건과 교전한 공산전투의 현장이다.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5,000여 왕건의 기병이 몰사의 위기에 처했을 때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을 피신케하고 왕의 옷을 바꾸어 입고 왕을 가장하여 싸우다가 장열하게 전사 한 곳으로 시신은 강원도 춘천에 예장되었다. 고려 때는 지묘사 를 지어 향사를 모시어 오다가 1607년 후손인 신흠과 외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신순겸 장군이 돌아가신 이 자리에 표충단(表忠壇)을 쌓아 위왕대사의 정신을 기려 오늘에 이른다.

표충단을 쌓은 후 기념식수로 우리 조상들이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나무인 배롱나무 다섯그루를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00여년 동안 큰 피해없이 잘 보호하여 수형이 반듯하게 자란 보호수

/2007. 07. 31 촬영

 

  이 나무는 신숭겸 장군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신숭겸 장군 나무'로 지정하고 안내판을 세워 보호하고 있어 그 전문을 기록한다.

 

  

 신숭겸(?~927) 장군의 시호는 장절(壯節)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이며, 고려의 대장군을 지낸 무장이며, 927년 이 곳 공산에서 견훤군과의 전투로 장열한 죽음으로 인해 충절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여 시호를 '장절'이라 하고 지묘사를 창건하여 그의 명복을 빌었으며, 제16대 예종은 팔관회에서 신숭겸, 김락 두 장군을 위하여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어 애도하였다.

수령이 약 400년 된 이 배롱나무는 현재 보호수로 지벙되어 관리하고 있으며,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그의 장열한 죽음은 천년을 뛰어넘어 오늘날 까지도 모든이의 귀감이 되고 있는 장군을 기리는 뜻에서 '신숭겸(申崇謙) 장군 나무'라고 이름지었다

 

 표충단 울 넘어로 보이는 배롱나무의 아름다운 자태

/2007. 07. 31 촬영

 

만개한 배롱나무꽃/2007. 07. 31 촬영

 

 

배롱나무 이야기/글 박상진 교수

부처꽃과 Lagerstroemia indic L. (영) Crape Myrtle
(일) サルスベリ (漢) 紫微, 紅薇, 翠薇, 百日紅, 紫微花

뙤약볕이 너무 진하여 햇빛에 잘 달구어진 푸른 나뭇잎마저도 늘어져 버리는 한 여름의 어느 날, 여름 꽃의 대명사 배롱나무 꽃은 비로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배롱나무는 제멋대로 아무 곳에나 둥지를 틀지 않는다. 조용한 산사(山寺)의 앞마당이나 이름난 정자의 뒤뜰 등 품위 있는 길지(吉地)에 사람이 심어 주어야만 비로소 자라기 시작한다.

진분홍빛 꽃이 가장 흔하고 연보라 꽃도 가끔 있으며 흰 꽃은 비교적 드물다. 가지의 끝마다 원뿔모양으로 마치 커다란 꽃 모자를 뒤집어 쓴 듯이 수많은 꽃이 핀다. 콩알만한 꽃봉오리가 나무의 크기에 따라 수백 수천 개씩 매달려 꽃필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살포시 꽃봉오리가 벌어지면서 6-7개의 꽃잎이 수평으로 뻗어 나오고 바글바글 볶아놓은 파마머리 마냥 온통 주름 투성이 꽃잎을 내민다.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이 타고난 주름을 펴줄 것으로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배롱나무는 잠깐 피었다가 금세 져버리는 대부분의 꽃들과는 달리 여름에 시작하면 가을이 무르익어 갈 때까지 석 달 열흘도 넘게 핀다. 그래서 다른 이름은 백일홍(百日紅)이다. 멕시코 원산의 한해살이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하여 나무백일홍, 한자 쓰기 좋아하는 이들은 목(木)백일홍이라고 한다.
과연 백일을 피어있는 것인가? 꽃 하나 하나가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들의 피고 짐이 계속되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꼭 같은 꽃이 피어있다는 착각일 따름이다. 먼저 핀 꽃이 져버리면 여럿으로 갈라진 꽃대의 아래에서 위로 뭉게구름이 솟아오르듯이 계속 꽃이 피어 올라간다.

원산지인 중국에서 처음 들어올 때는 연보라 빛 꽃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이름은 자미화(紫微花)이며 당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에 많이 심어놓아 양귀비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현종은 아예 자미성이라고 불렀다 한다.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이나 강희안의 양화소록 등 우리의 옛 기록에도 역시 자미화이다.

옛부터 선조 들이 즐겨 심어 왔으며, 오늘날도 꽃의 명성을 잃지 않는 곳이 여럿 있다.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 문인들의 정자가 밀집해 있는 광주천의 옛 이름은 배롱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자미탄(紫薇灘)이다.


그 외에도 고창 선운사, 다산초당과 이어진 강진의 백련사,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경주 서출지(書出池) 방죽의 배롱나무 등이 유명하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피는 특징말고도 껍질의 유별남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오래된 줄기의 표면은 연한 붉은 끼가 들어간 갈색이고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얼룩무늬가 생겨 반질반질해 보인다. 다른 나무에서 볼 수 없는 배롱나무만의 특징이다.

발바닥이나 겨드랑이의 맨살을 보면 간지럼을 먹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듯이 배롱나무 줄기를 보고 중국사람들은 자미화 이외에, 파양수라 하여 간지럼에 부끄럽다고 몸을 비꼬는 모양과 비유하였다. 우리도 충청도 일부 지방에서는 '간지럼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껍질의 매끄러움에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떨어진다고 '원숭이 미끄럼 나무'로 이름을 붙였다.

찾아가기

대구공항에서 불로동 봉무동을 지나는 팔공로로 가다가 파군재 삼거리가 아오며 삼거리에서 동화사로 가다가 팔공보성매션쪽으로 들어가면 동화천이 나오고 동화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신숭겸 장군 유적지가 나온다. 그리고 파군재에서 파계사쪽으로 가면 좌회전 하여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해 가서 동화천 다리를 건너 바로 우회전하면 유적지가 나온다.

 

GSP좌표   : E 128°38′35.00″,  N 35°56′20.00″

교통정보 :

방문정보 : 동구청 도시공원과 ☎ 053-662-2853(담당공무원 홍순철)  / Fax. 053-662-2819 

                공산동 사무소 ☎053-981-2306, 985-5426

                 신숭겸 장군 유적관리소 소장 정남용 ☎053-985-1330, 010-5550-4669

 

*1차 답사 : 2007. 07. 31

 

글, 사진/정시식(영남문화회 회원, 오류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