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나무 순례***/대구 보호수 순례

동구 평광동 왕버들/보호수 2-10

是夢 2007. 8. 2. 17:36

동구 평광동 왕버들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1498-3

보호수 2-10(1982. 10. 30 지정)

관리인 정보 : 평광동 3통 통장 최봉현

소유자 정보 : 대구광역시 동구청(하천부지)

 

 왕버드나무는 보통 둥근 수관형을 가지나 이 보호수는

다섯개의 가지가 직립하여 모양이 당당하다/2007. 07. 31 촬영

 

  이 나무는 평광동 동네로 들어가는 도로 가운데 버티고 서있어 동네 표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나무를 가운데 두고 출입을 하고 있으며 '평광동' 표지석이 두개나 있다. 오래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작은 표지석에는 한자로, 그 뒤에 설치한(2004. 04. 24) 큰 표지석에는 한글로 '평광동'이라 새겼으나 큰 표지석보다는 앳날의 작은 표지석이 더 아담하고 글씨체도 좋아 보인다.

 

 2004. 04. 24 설치한 한글 표지석

 

  도로의 양쪽으로 다니는 차량으로 부터 보호하기위해 남북으로 22m, 동서로 넓은 곳이 겨우 5m정도의 마름모꼴로 연석을 만들어 보호장치를 하였으나 노거수가 생장하기에는 너무나 좁은 공간이다.

 

 

평광동 주민(경주 최씨)과 왕버들/2007. 07. 31 촬영

 

  나무높이는 15m이고 가슴높이둘레는 5.5m, 수관폭은 15m, 수령은 약 180년(보호수 지정 당시 150년으로 추정)으로서 수형이 우람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아름다운 모습이나 수세가 많이 쇠약해 보인다.

 

 

보호수 양쪽으로 차량 통행이 잦아 수세가 쇠퇴하여 가지가 마르고 있다

/2007. 07. 31 촬영

 

  이 나무는 200여m 인근에 있는 효자각의 인물인 강순항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에서 '효자 강순항나무'로 지정하고 현판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그 현판의 내용을 소개한다.

 

  「가은(稼隱) 강순항(姜順恒 1745~1830)은 어릴때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어느해 겨울 병상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참외를 먹고싶어하자 엄동설한인데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당시 참외농사를 많이 짓던 방촌에 가서 남의 가축 사료더미를 뒤져찾아 드렸고, 또한 잉어를 먹고싶어 하자 낚시를 놓기 위해 꽁꽁 얼어붙은얼음을 깨니 잉어가 튀어 올라와 고아 드렸으며, 소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해안장에 가서 쇠고기를 사오는도중 향산 밑 개울에서 땀을 씻기 위해 사온 고기를 잠시 바위위에 놓아 두었는데 지나가던 독수리가 낚아채 가풀 죽어 집에 돌아오니 이미 아내가 국을 끊이고 있었다. 영문을 알아 보았더니 '남편의 귀가가 늦어마당에 나섰는데 마침 독수리가 집으로 날아와 떨어트린 쇠고기를 끊인 것' 이라 하여 새조차도그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난 순항의 지극한 정성도 아랑곳 없이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3년 동안 무덤옆에 초막을 짓고 보살피니,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30년(순조 30년) 정려가 내려지고 숭정대부지중추부사(崇政大夫知中樞副事)가 증직 되었다.

마을입구 효자각 앞의 이 왕버들나무는 그의 효행을 상징이라도 하듯 우뚝 서 있어 '효자 강순항 나무'라고 하여 그의 효행을 기려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데 하고자 하였다."

 

  보호수에서 마을쪽으로 200여m지점에 있는 강순항 정려각

/2007. 07. 31 촬영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후의 왕버들

/2007. 08. 10 촬영

 

왕버들 이야기/글 박상진 교수 

버드나무과 (학명) Salix glandulosa Seem (영명) willow (일명)アカメヤナギ (漢) 河柳, 鬼柳

버드나무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게 자란다는 뜻으로 왕버들이라고 한다. 전국의 개울가, 호수가 등 유난히 물이 많은 곳을 특히 좋아하여 하류(河柳)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귀류(鬼柳)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왕버들의 오래된 고목은 나무 속이 잘 썩어 버려 큰 구멍이 생겨 있는 경우가 많다. 비오는 날의 밤에는 구멍 속에 잘못 들어갔다가 죽어 버린 곤충이나 설치류에서 나온 인(燐)의 작용으로 푸른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름하여 도깨비불이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무섭고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혀 잔인성이 없고 장난이나 심술을 부려도 은혜를 잊지 않은 등 사람과는 친숙한 귀신이었다. 귀류에서 이름을 따 도깨비버들 혹은 귀신버들이라 하여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옛 문헌에는 흔히 '柳'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하게 무슨 버드나무인지는 알기 어렵다. 삼국유사 제5권 혜통스님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그 때 당나라 공주가 병이 들어 고종이 삼장에게 치료해 주기를 청하니, 삼장은 자기 대신 혜통을 천거했다. 이에 혜통은 용을 퇴치하니 이내 공주의 병은 나았다. 그러나 용은 혜통이 자기를 쫓은 것을 원망하여 신라 문잉림(文仍林)에 가서 더 많은 인명을 해쳤다. 이 때 정공(鄭恭)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혜통을 보고 말하기를 "스님이 쫓은 독룡이 본국에 와서 그 해가 심하니 속히 가서 없애 주십시오"했다. 이에 혜통은 정공과 함께 문무왕 5년(665)에 본국으로 돌아와 그 용을 쫓아 버렸다. 용은 다시 정공을 원망하여 버드나무로 변해서 정공의 문 밖에 우뚝 섰다. 그러나 정공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잎이 무성한 것 만 좋아하여 매우 사랑했다. 문무왕, 신문왕이 세상을 떠나고 효소왕(692-702)이 즉위하여 산릉(山陵)을 닦고 장사 지내러 가는 길을 만드는데 정공의 집 버드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섰으므로 관리들이 이것을 베려고 했다. 이에 정공은 노하여 "차라리 내 목을 벨지언정 이 나무는 베지 못한다" 했다.

이 말을 아뢰자 왕은 크게 노하여 법관에게 명하기를, "정공이 왕화상의 신술을 믿고 장차 불손한 일을 도모하고자 하여 왕명을 거스르고 제 목을 베라고 하니 마땅히 그가 좋아하는 대로 하리라"하고, 목을 베어 죽이고 그 집을 흙으로 묻어 버렸다>. 잎이 무성하다는 것으로 보아 왕버들로 생각하였으며 나무 하나에 목숨까지 버렸으니 나무사랑이 지극한 탓인지 아니면 무모한 탓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지름이 두 아름쯤에 이른다. 수관이 크게 벌어지고 줄기는 비스듬히 자라는 경우가 많아 물가의 조경수로 예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이 갈라진다.

작은 가지는 황록색으로 털이 있다가 없어지며 겨울눈은 2∼3mm 남짓하고 달걀모양이다. 잎은 5백원 짜리 동전 한 개 혹은 두 개 길이 정도이며 새순이 돋을 때는 주홍빛이며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탁엽이 귀모양으로 된다. 잎자루의 윗부분에 2개의 선(腺)이 있고 겨울눈의 비늘조각은 가장자리가 포개져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잎과 함께 봄에 피고 열매는 길이 3mm정도의 삭과로서 달걀모양이며 봄에 익고 가벼운 종자는 솜털에 싸여 날아다닌다.

조사자 의견

수형이 일반적으로 타원형인 다른 왕버들에 비해 수직으로 뻗은 기상이 늠름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무로 평광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표지목으로서의 역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를 중심으로 너무 가깝게 도로를 만들어 나무의 성장에 지장을 주고 있으므로 이런 장애를 제거하여 보호수를 잘 보호할 조치가 필요하다. 

 

 

찾아가기

대구공항에서 불로동으로 가다가 불로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꺽어 제방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다리를 건너 도동 천연기념물 제1호인 측백수림이 있는 향산을 지나 가면 평광동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버티고 서 있는 보호수를 만날 수 있다. 불로교에서 5.2km지점이다.

 

GPS좌표 : E 128°41′09.79″,  N 35°55′45.60″  고도 145m

교통정보 :

방문정보 : 동구청 도시공원과 ☎ 053-662-2853(담당공무원 홍순철)  / Fax. 053-662-2819 

                도평동사무소 ☎053-983-2301, 985-5419 

                3통 통장 최봉현 ☎053-984-0030, 010-9990-2223

 

 

***국가생물정보시스템-보호수-내용보기의 기본정보에 수록된 보호수 소재지 '평광동 865번지'는 보호수에서 2.8km 떨어진 바람골(당남길 243)이고 이 곳에는 왕버들이 없다고 그 곳 주민들이 증언했다.

 

*1차답사 : 2007. 07. 31

*2차답사 : 2007. 08.10

  

 글, 사진/정시식(영남문화회 회원, 오류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