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나무의 순수한 우리말 이름으로 한자로는 자도(紫桃)라고 한다. 즉 자주빛깔의 복숭아라는 뜻으로 1,500여 년 전 중국에서 들어왔다. 18세기 초 농림업은 물론 주택, 건강, 의료 등 농촌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담은 홍만선(1643~1715)의‘산림경제’종수(種樹) 편에 ‘복숭아나무는 바투 심어야 좋고, 오얏나무는 띄엄띄엄 심되 남북으로 줄을 맞춰야 좋다.’고 해 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월 초하루 5경(更상오 3~5시 사이)가지사이에 돌멩이를 끼워 놓고 장대로 가지 끝을 두드려주면 열매가 많이 열린다. 섣달 그믐날 밤도 같다.’ 라고 하여 남녀간의 교섭을 통해 다수확을 기원한데서 비롯한 ‘나무시집보내기’ 풍속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문가, 귀족들은 특수한 문양이나 새, 짐승들을 그들의 문장(紋章)으로 삼아 가문의 권위를 나타내고, 중국의 황제나 조선시대 왕은 용(龍)으로 휘장(徽章)을 삼아 의자인 용상(龍床)은 물론 의복에도 용을 수놓은 곤룡포를 입고 정사를 보았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 날에도 이어져 미국 대통령은 독수리, 우리 나라 대통령은 공작새를 사용한다. 오얏나무는 조선왕조의 건국과 깊은 관련이 있는 나무다. 도선 국사는 일찍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망하고 삼한이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통일 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따라서 풍수지리설을 크게 신봉(信奉)하고 있던 고려 조정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한양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도참설이 횡횡하게 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북악산 일대에 이씨(李氏)를 상징하는 오얏나무를 심고, 그 기운을 꺾기위해 벌이목사(伐李牧使) 즉 ‘오얏나무 베는 것을 전담하는 관직’을 만들어 한양에 상주시키며 도성 안에 있는 모든 오얏나무를 베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책(秘策)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기틀이 무너지면서 정도전 등 당시 신진 세력의 추대를 받든 이성계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오백여 년을 버텨 온 고려 조정은 막을 내리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오얏나무는 조선 왕실의 문장(紋章)으로 자리를 잡아 왕실에서 사용하는 그릇 등에 오얏꽃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과즙이 많고 맛이 새콤달콤하여 과실로도 인기가 높지만 녹색이 깃든 흰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좋아 집안에 한두 그루 심으면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하여 오해 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처세훈을 제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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