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글***/기행문

실크로드에 꽃비가 내리다 (絲路花雨)/박 윤호

是夢 2008. 1. 3. 22:38
 

                      실크로드에 꽃비가 내리다 (絲路花雨)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2007. 9. 4 화 : 인천 발 서안 착

2007. 9. 5 수 : 비림. 진시황릉. 병마용. 화청지. 천수로 이동  

2007. 9. 6 목 : 천수 맥적산 석굴. 난주로 이동

2007. 9. 7 금 : 난주 감숙성 박물관. 황하모친상. 병령사 석굴. 열차로 가욕관으로 이동 

2007. 9. 8 토 : 가욕관 성루. 장성박물관. 위진 벽화묘 돈황으로 이동

2007. 9. 8 일 : 막고굴. 명사산. 월아천. 열차로 투류판으로 이동

2007. 9.10 월 : 카레즈. 교하고성 화염산. 고창고성. 고분군. 천불동

2007. 9.11 화 : 우루뮤치. 신강박물관. 천산천지 항공으로 북경 행

2007. 9.12 수 : 수도박물관 북경 - 인천 착


버스란 낙타를 타고  2007. 9. 5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가는 길은 사로(絲路)는 비단길이요 사로(砂路)는 사막 모래 길이다. 비단길이 실크로드다. 그 길에 비가 내린다. 실크로드에 꽃비가 내린다는 시어가 정말이다. 사막은 낙타가 다니던 옛적 길을 우리에게 내어 주었다. 그래서 무사히 아주 무사히 사람 사는 것도 보고 문화라는 사치도 문명의 흐름도 어름푸시 보여 주었다.   

서안과 장안은 서로 다른 지명이라 생각 했다. 서안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무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의 출발지다. 서안에서 우루무지까지 먼 여정을 버스란 낙타를 타고 사막과 오아시스 그리고 초원으로 가야 한다.

서안은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세계 4대 역사도시이다. 중국의 2천년 역사를 보려면 서안을 가야하고 3천년의 역사를 보려면 천수를 보고 1천년의 역사는 북경을 보라 했다. 서안에서 해가 뜨면 개가 짓는다. 흐린 날이 많다는 말이다. 헌데 우리가 가는 날은 서안의 개들이 많이도 짓을 듯 같다. 서안의 광고탑에 ‘아상(我想) 아추(我做) 아초월(我超越)’ 이것이 오늘날 서안의 역동상이다.


비림 碑林

숲이라, 석비(石碑) 숲이라,

한 점 획이 빈 碑林이라.


사람 백년을 금석에 새겨

천년을 남겼구려.


‘비림이라, 비림’

허공들 보며 빈손으로 돌아 서누나.


한대(漢代)에서 청대(?代)까지 석비와 묘비 3천 개를 모아 놓은 비석들의 숲이다. 남향으로 난 정문에 덕배천지(德配天地 천지에 덕을 베풀고) 문묘 (文廟 공자를 모신 사당) 도관고금(道冠古今 늘 도관의 품위를 갖추다)을 음각해 놓았다. 비림의 위상이다. 들어가는 정원에는 8채의 비각에는 어느 이의 공적과 서체가 새겨 있는지? 

현판의 비(碑)자는 한 점 획이 빠져 있다. 비림을 쓴 임칙서는 안녹산 사건에 연유되어 붙잡혀 가면서 그는 언젠가 돌아와서 빠진 한 점을 찍겠다고 하였으나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한지 그대로이다. 다 때가 있는 법 그래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하지 않았던가.

서예가가 한 글자의 포치를 놓고 고심참담을 거듭하는 것과 시인이 한 구절의 타당함을 얻기 위해 제 눈을 찌르고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마다않는 것은 서로 다를 바가 없다. 위대한 예술의 바탕에는 이러한 전설이 으레 따라 다닌다. 글씨를 써서 천 자루의 몽당붓을 만들고, 먹을 갈아 여러 개의 벼루를 밑창 내는 노력이 또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모든 작품이 다 걸작은 아니다. 걸작이란 일생 동안 몇 번 만나보기가 어렵다. 나머지는 이 몇 번의 득의와 회심을 위한 기다림과 연마의 시간일 뿐이다. 시인들은 한 두 수의 대표작으로 세상에 기억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존재다. 그런데 대표작이란 것이 작심하고 달려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누에가 실을 뱉듯 자연스러운 순간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 민)   

비림을 보며 정민교수의 ‘평범 속의 비범’ 이 머리에 차다. 숱한 시인과 서예가는 가고 없지만 눈을 찌르고 고통을 감내한 그들의 모습과 누에가 실을 뱉듯 그러한 경지들을 체면도 없이 보고 나섰지만 ‘넌 무엇을 보고 가느냐?’ ‘당신은 지금까지 뭘 하고 왔느냐. 고 비림의 비석들이 따라 오면서 내 묻는다.   

 

진시황 병마용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전경        실물크기의 병마용         진시황이 타고 저승으로 가는 수레

 

거대할 것 같은 진시 황릉은 먼빛으로 완상하고 병마용 전시실로 들어섰다. 죽은 진시황을 경호하기 위한 황릉 동쪽 1km 떨어진 지하벙커에서는 사단 병력이 중무장을 한 채 출전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 상태다. 병사들의 표정이나 눈빛은 마주 할 수 없는 당당함에 외면하고 싶었다. 진시황보다 병마용을 기획 제작한 도공들이 더 위대하다.

제2관은 황제를 호위할 수레에 차양산(遮陽傘)을 치고 떠날 태세다. 수 십 필의 말, 수많은 병사들의 위용과 위상으로 보아도 진시황의 위세는 짐작하리라. 깨어진 병마용은 언제쯤 제 모습을 회복하고 숨을 쉬고 나올 런지. 이지적인 문무관, 날렵한 기사도의 병사, 병마들은 그 시대 영화로움과 찬란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병마용은 한 농부의 밭갈이에서 발견하였다고 그 이전부터 주민들은 밭에서 뒹굴던 병마용을 주워 신으로 섬기기도 하고 허수아비로 세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닐 듯싶다. 군위 제2석굴암도 마을 사람들은 돌구멍 절이라 불렸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처음 발굴이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갱들은 섣불리 발굴하지 않는단다. 중국다운 만만디다.


천수로 가는 길  2007. 9. 6 (수)

한 시인은 우리가 가는 길을 실크로드에 꽃비가 내린다고 사로화우(絲路花雨)라 했다. 오늘 따라 버스의 와이퍼가 작동한다. 비가 온다. 꽃비가 온다. 사막에서 말이다. 천수에서 난주로 가는 길은 확장공사로 흙탕길이다. 가파른 길은 산을 뚫어 굴을 만들고 강은 깊어 거슬리지 못해 교각을 세운다. 골조들이 완성되는 날 옛 주인공인 낙타들을 망각 속으로 묻어 버리겠지.

오나가나 토산이다. 계단밭에 옥수수가 자라고 목화를 심었다. 사람 사는 모습이요 인간의 낙이다. 화물차들은 만삭의 몸으로 헐떡거리며 가파른 산길을 빌빌대며 오르내린다. 신기한 것은 버스나 화물차의 포장 덮개에도 차번호를 큰 글씨로 써 놓았다. 뺑소니를 막는 대책으로 상책이다. 대국다운 교통행정의 아이디어이다. 

터널을 뚫고 나오면 경관이 다르고 다리를 건너면 풍광이 바뀐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다. 백호산(白虎山)터널을 지나 류통하(柳通河)부터는 지붕들이 특이하다. 한쪽 벽을 높게 쌓아 지붕들을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해 놓았다. 빗물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자연환경은 의식주는 물론 사람도 바꾸는 마력을 가졌는지, 얼굴 또한 회색 모래 빛이다.  

간간히 민가 굴뚝에서는 저녁연기가 오른다. 사람 사는 존재를 알린다. 찻길은 좁아 다닐 길이 아예 없으니 밤길에 불빛만 비쳤다 하면 사람이나 자전거는 어둠을 탈출하기 위해 냅다 뛰고 달린다. 내리막길에 화물차 한 대가 벌렁 누웠다. 이 산골에 어느 차가 와서 견인해 줄 런지 남의 일이라도 참 딱하게 되었다. 산은 첩첩, 안개 자욱, 강물은 유유히, 천수로 가며 본 풍경들이 곧 중국의 산수화다.


천수 맥적산(麥積山)석굴

 

                   맥적산 전경                  수직벽에 설치한 나무계단        맥적산의 삼존대불

    

보릿단을 쌓은 짚단처럼 원추 같은 모양이라 맥적산이라 한다. 지명이나 지세를 함축하기론 한자만한 글이 없다. 맥적산에 오르는 계단을 길에서 보면 흡사 건축현장을 연상하게 된다. 깎아지른 절벽에 대불과 보살 두상을 조소해 놓았다. 역암 층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다 석굴이요 절이다. 서쪽 절벽에 194개의 동굴에는 7200개의 불상과 1300점의 벽화가 있단다. 불상들은 단단한 막대기를 심대로 삼고 그 위에 갈대와 황토를 섞어 몸체를 만들고 다시 그 위에 석회를 발라 채색하는 과정을 밟는단다.

가는 날, 맥적산에 안개 같이 부옇게 가량비가 내려 ‘맥적연우(麥積煙雨)’를 연출하다. 이 또한 천수 8대경(天水 8大景)의 일경이라 만끽하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호두가 많이 보인다. 5월경에 어린 호두를 따 술을 담아 먹으면 관절염에 특효라나


복 받는 감숙성(甘肅省)

        

    황제 권력의 상징인 삼발솥(三足鼎)          감숙성의 고대 기마상         청동기의 걸작 연비주마상(燕飛走馬像)

                                  

감숙성은 중국대륙의 중심이다. 東은 협서성 南은 사천성 청해성 西는 신강 우루무치자치구 北은 내몽고자치구와 몽골과 국경하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지형은 황토 고원과 지형으로 평탄한 지역과 사막, 만년설과 빙하가 쌓인 설산을 볼 수 있고 소수민족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수력자원과 풍력발전, 풍부한 비철 금속의 지하자원, 화학비료공장과 수리시설로 급속도로 발전하여 그 터전을 닦고 있었다.    


난주에서 가욕관으로   2007. 9. 7 (금)

                

                  낙조가 서부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신실크로드       고장난 차의 화물을 옮겨싣느라 길을 가로 막고 있다

 

 

황하는 해마다 범람하여 막대한 피해를 낳는다. 그래서 예부터 황하를 다스리는 자는 천하를 다스린다고 했다. 황하는 엄마의 품이요 양자강은 아버지의 맥이란다. 동산황하대교(東山黃河大橋)옆 자리에 황하모친상이 다리는 뻗고 반신으로 앉아 아이를 어른다  하나 낳기 운동에서 아이의 성별을 고심한 끝에 엎드려 기는 아기를 택했나보다. 남아인지 여아인지 구별 못할 재미있는 구상이요 적절한 발상이다.

난주에서 가욕관까지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침대차를 타다. 다행히 아랫간에서 잠을 청하다. 2층은 에어컨이 세어 코가 약한 사람은 자고나면 콧물을 흘리게 마련이다. 인솔자는 두터운 마스크를 준비해 주어 참 고마웠다.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 알기 때문이다.

눈을 뜨니 삼경이다. 순간 커튼을 열고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밤하늘에 예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영롱한 별빛이 밤하늘이 가득하다. 별빛 쏟아지는 밤이라더니 이를 두고 한말인가 보다. 어릴 적 외갓집에서 덕석을 깔고 엄마 무릎베개에 밤하늘을 보던 그때의 별들이다. 눈이 시리도록 은하계와 은하수는 총총하다. 청청 하늘에 잔별도 많다. 별꽃놀이다. 새벽이 오는가 보다. 별은 빛을 잃고 먼 산 위로 주황색 그믐달이 걸렸다. 자연의 선물을 덤으로 얻었다.


쟈위? (가욕관 嘉?關)행 밤차를 타다  2007. 9. 8 (토)

가욕관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침대차를 타다. 아랫간에서 자게 되어 다행이다. 윗간은 에어컨이 세어 자고나면 콧물을 흘리게 마련이다. 두터운 마스크를 준비해 준 인솔자가 참 고마웠다.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기 때문이다.

눈을 뜨니 삼경이다. 순간 커튼을 걷고 누운 채로 하늘을 보다. 별빛들이 영롱하다. 별빛 쏟아지는 밤이라더니 이를 두고 한말인가. 어릴 적 외갓집에서 덕석을 깔고 엄마 무릎베개로 밤하늘을 보던 그때 그 별들이다. 눈이 시리도록 총총한 은하계와 하얀 은하수가 흐른다. 청청 하늘에 잔별도 많다더니 별꽃놀이다. 새벽이 오는가 보다. 별은 빛을 잃고 먼 산 위로 그믐달이 뜬다. 자연의 선물을 덤으로 얻은 셈이다.

                 

        초라한 천하웅관(天下雄關)을 드나드는 관광객                웅장한 성안의 누각들

 

 

가역관은 서역으로 나가는 관문이요 서역에서 서안으로 들어오는 낙타의 역문이다. 옛 장군 터가 있었던 관아자리 앞 성루는 정루(正樓)라 내성의 전망대로 내성의 흐름은 물론 외성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천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요새이다. 전성기 때는 3000명이 주둔하였다는 해설자의 말을 다니며 궁성 된다. 정말 3000명이 맞느냐고 이럴 때는 아이나 다름없다. 

             

                     

                               내성의 아름다운 모습                                 어느 누각 천정의 태극 무늬

             

 내성을 돌다보면 성 한 귀퉁이에 지형 상, 보기 어려운 둥근 바윗돌 하나에 ‘격석연맹’(擊石燕鳴)란 글씨를 본다. 제비 한 쌍이 이 성에 살았다. 어느 날 수컷이 먹이를 구하러 나가서나 날은 저물고 어두워도 돌아오지 않고 더욱이 성문은 굳게 닫혔으니 제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정을 안, 암컷은 자기 몸을 성벽에 부딪쳐 소재를 알려 주어 찾아 와서나 상처로 죽어 있었다. 죽은 제비의 혼이 바윗돌이 되어 두드리면 제비 우는 소리가 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멋없는 사람들은 제비소리가 아니라고 우긴다. 중국의 제비의 소리를 듣기나 한 것처럼. 미물의 정성만도 못한 귀로 어찌 전설의 제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어중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루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아닌 비탈길이다. 말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한 배려다. 이 비탈길로 성벽의 벽돌을 옮길 때 산양을 동원하였단다. 산양은 험한 길을 잘 오르는 것을 안 목도의 기지로 말이다. 어제 본 화물차의 산양들도 성벽을 쌓기 위해 동원된 것은 아닌지.

 

정루(正樓)의 얹힌 벽돌 한 장

정루 뒷벽 난간에 벽돌 2장과 성을 쌓을 때 숨겼다는 벽돌 1장이 성벽 턱에 놓여 있다. 가욕관을 쌓을 때 이야기다. 벽돌공의 정확한 계산으로 1만장의 벽돌이 든다고 장담했다. 이를 시기한 책임자가 1장을 숨기고는 한 장이 모자란다고 우기자 벽돌공은 난처했다. 그러나 책임자가 숨긴 1장이 탄로 나자 이번엔 책임자가 위태하자 숨겼던 벽돌 1장을 내어 놓았다. 그 벽돌이 정루 뒤에 놓인 벽돌이다. 이 벽돌은 영험하여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가욕관의 전 성루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제일 높은 성루의 수막새의 와당은 하회탈의 촐랑이를 닮았다. 이 문양은 장성박물관에서도 가욕관을 상징하는 건물에서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다.


실크로드의 정수리 둔황

 

                                   

                                           막고굴의 대불을 모신 누각

둔황산장은 둔황의 멋을 한껏 내기에 몸부림을 쳤다. 실내에 갈대로 발을 쳐놓았다.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정원은 자갈밭에 괴석만 놓였다. 산장의 별관 풍국사의 독특한 정취에서 아침을 먹다. 口자형 목조건물로 정면 7간 측면 4간으로 궁궐 같다. 마루는 서하(西夏)시대의 전돌 문양을 깔았고 벽은 막고굴의 벽화를 옮겨 놓은듯하다. 이름으로는 특이한 풍국사(豊國祠)라는 현판이 걸렸다. 사(祠)는 사당이 아닌가.

불교 유적지로 인상에 남는 곳은 경주 남산과 인도 미얀마의 바간, 둔황(敦煌)석굴이다. 아직 미얀마의 ‘바간’은 가보지 못했다. 둔황 석굴은 사막의 돌산에다 700개가 넘는 굴을 파고 불화들을 그렸다. 천년의 세월이 투자된 셈이다. 미얀마의 ‘바간’은 사방 42km의 넓은 평원에 2500개의 크기가 다양한 탑들이 고색창연하게 흩어져 있어 장엄하고 엄숙하단다. 어느 칼럼에 바간의 ‘탑’ 둔황의 ‘석굴 벽화’ 경주 남산의 ‘마애불과 불상’은 불국토의 세계라 하였다.        

막고굴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북위 서하 한 주 수 당 오 송 원 청에 이르기까지 석굴을 파고 부처를 모셨다. 40여 미터 높이의 대불과 30m가 넘는 와불은 참으로 대단하다. 벽화에는 시대의 생활상과 풍속화로 고색이 창연하다. 하나 이 석굴에도 침략자들의 오만과 무식한 완장패들로 얼마나 수난과 훼손을 당하였는지. 


막고굴 이신(李新) 선생

        

                     둔황 연구원 이신 선생

 

이신 선생은 둔황사둔황연구원의 고급해설사요 특히 한국 둔황학 연구회원이다. 그는 둔황예술명품 한글판 편집에 기여한 분으로 말씨로 보아서는  한국계로 보아도 좋을 듯싶다.  ‘퍼득퍼득 오이소’ ‘빨랑 오랑게’ ‘뭘 꾸물꾸물 거리 유’ 사투리로 농담할 정도다.

그는 담배를 즐겨 이빨은 잘게 삭았고 연구로 그런지 머리카락은 듬성하고 졸보기안경을 썼다. 이 더위에 정장차림하고 나선지라 웃옷을 벗어 달랬더니 거절하며 웃옷만 벗어 들고는 장장 15개의 석굴을 안내해 주었다.          

9월말부터 석굴 몇 개는 보존상 영원히 폐쇄한단다. 이어 한 자료실에서 그는 둔황을 훔쳐간 도둑들로 열을 뿜는다. 탐험과 답사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경서와 고문서, 자수, 비단그림, 법기 등을 훔쳐간 도둑들의 이력을 들춘다.

1. 1907년 영국의 스타인, 탐험을 빌미로 경전 고사본 비단 종이 불화 가져가 영국    박물관과 도서관에 보관

2. 1908년 프랑스의 펠리오, 5천 점의 고사본, 150점의 회화, 법기 등 공예품들을 가    져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 때 가져가 파리국립박물관에 보관

3. 1911년 일본의 오타니, 불상 불화를 가져감. 이 물품들은 서울국립박물관에 보관    됨. 그 후 일본군들이 석굴을 파괴  

4. 1914년 러시아의 울덴부루크 일행이 발굴품을 헐값으로 산 경서들을 현제 러시    아 에르미타주미술관에 보관

5. 그 뒤 미국인 워너 중국인 진 만리 향달 등이 조사

6. 홍위병들이 파괴


막고굴은 오늘도 부처를 모시고 패션쇼가 한창이다. 실크차림으로 속살도 훤히 보이는 몸매에, 스카프를 매고 배꼽을 들어낸 채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화려하고도 긴 드레스를 끌면서 절제된 미소를 띠며 자비로운 표정을 나선 패션쇼가 보고프다

그 많은 보살들, 악을 징벌하고도 엄숙한 천왕, 금강역사 미륵불들은 빽빽하고 모여  설법을 듣고 있을 것이다. 특히 남자비천상, 닭싸움, 쌍룡도, 채발도, 제왕도 수렵도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화승들이 그린 시간만큼이나 공만큼 할애해야 참 맛을 볼 것 같다. 

제112호의 무악도(舞樂圖)에서는 여섯 명의 악사들의 연주로 절정이다. 비파를 타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북고 박을 치고 공후를 켜고 그 가운데쯤에 늘씬한 몸매를 한 보살은 훤히 가슴과 배꼽을 들어낸 채 다리를 살짝 들어 발바닥을 들추며 어깨 너머로 비파를 타는 반탄비파(反彈琵琶)상은 중생들의 마음도 녹일 듯 화려하고 화사하다. 반탄비파상은 둔황의 네거리로 나서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신라에서 온 왕자를 벽화에서 만났다. 그는 유관을 쓰고 잔잔한 미소를 띠며 병아리 색 도표로 법회에 참석차 왔는지? 불법을 수학하러 왔는지? 각국의 사절단 속에서 그를 뵐 수 있었다. 멀리도 오셨다. 천년의 역사가 전개되는 순간이었다. 왕자를 만날 장소로는 협소하다. 설명을 들은 이들은 자리를 양보할 낌새는 아예 보이지 않아 해설사의 손전등을 받아 들고 왕자의 모습에 조명하다.

어느 누구의 말처럼 깜도 안 되는 일들은 어두운 석굴에서 창 넓은 모자로 뒷사람을 가리는 일. 석굴 안에서도 선글라스를 낀 채 감상하는 시력의 소유자들, 타종교의 문화라고 그 먼 거리에 와서도 시큰둥한 표정들, 메모지 한 장 없이 답사에 참가하는 뱃장, 해설자의 설명보다 제 이야기에 넋 놓는 이들, 나이 값도 못하는 좁쌀영감들의 심술, 조금 덥다 싶으면 에어컨에 손을 갖다 대다가도 빛만 들어왔다 하면 불난 듯 커튼을 쳐대는 일, 기내에서 신문 보겠다고 창 쪽에 앉은 사람을 타박하는 오만, 대합실에서 짐 맡겨놓고 애간장 태우는 일, 특산물가게에서 한줌 속이겠다는 설치는 이, 여편네 편하라고 빈자리 찾아다니는 일, 식사하고 입 행근다고 우물우물 소리 내는 일, 다 제 멋의 천안삼거리겠지만 볼 상 사납고 매너 없는 짓들이다.


명사산 월아천 (鳴山 月牙泉)

 표석넘어로  낙타의 행열이 보이는 명사산.   명사산의 오아시스 월아천 전경             월아천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자연 그대로 모래 산을 처음 대하다. 태고 적 그대로 자연 앞에 선 사람으로 느끼는 감정은 말을 잊었다. 모래의 퇴적으로 이룬 명사산,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은 3천년을 모래 산에 버티며 물을 머금은 채 그대로다. 낙타들이 울며 오르는 명사산 아래 위치한 사원은 찾아온 시인 묵객들의 읊은 시로 도배를 했다.

일출을 맞는 조휘(朝暉), 일몰을 보내는 석조(夕照) 중앙 누각에 천사(天賜)라 범상치 않다. 비경을 찾은 시인묵객들의 시어로도 그 풍광을 완상하리라. 


水靜印月 (수정인월) : 고요한 물에 달 도장을 찍다

月別風來 (월별풍래) : 달을 보내니 바람이 찾아오다

妙泉守視 (묘천수시) : 오묘한 월천을 지켜보다

月泉曉澈 (월천효철) : 월천의 새벽길을 밟아보다

沙山麥海 (사막맥해) : 모래 산 명사, 보리바다 월아천 

취수득산 (趣水得山) : 물을 즐기고 산을 얻다.


초산풍지원 (炒山風地遠) 백천지경근 (白泉之景近)

명사산의 풍광은 멀고, 백천의 풍경은 가깝다


명사산일송 (鳴沙山日送) 월천성하생영 (月泉星下生榮)

명사산에서 해를 보내고, 월아천 별 아래서 생을 누리다


정수중천 (精粹崇天) 청명감월 (淸明鑑月) 

깨끗하고 순수함으로 하늘을 받들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달을 완상하다

곤원잉기 (坤元孕氣) 잠양성천 (潛揚成天)

땅은 원기를 잉태하고, 숨은 기는 하늘을 이루다


명사기산 (鳴沙奇山) 월아고천 (月牙古泉)

명사의 기아함,  월아의 옛 샘


사산승경 (沙山勝景) 중국일절 (中國一絶)

명사산의 승경은 중국의 제일이라


일곡감천 (一曲甘泉) 백인명사 (百?鳴沙)

한 굽이 감천, 백 길 명사산


포도의 고장 투루판(吐魯番)  2007. 9. 10 (월)

       투루판의 특산품 포도                       달기로 유명한 석류                          시장에 진열한 호박

 

둔황 역은 새 역사를 짓는다고 임시 역사는 난장판이다. 둔황 역에서 13시간 걸리는 장거리라 포도의 고장 투루판으로 가는 밤차를 타다. 기(氣가) 빠진 모래 산에서도 나무가 지탱하고 낙타의 먹이인 파란 가시 풀들이 돋는다. 4시 30분경, 의식적으로 커튼을 걷었다. 바깥은 캄캄하다. 얕은 산들이 밤새 내내 따라 온 모양이다. 스치는 불빛에 거미줄 같은 비가 내린다. 우루무치로 가는 하일 역내는 살수를 한 듯 젖었다. 사막에 비라니 낮에 본 신기루처럼 착각인가 착시인가. 비가 왔다면 헛소리라고 하겠지 입을 닫았다. 그러나 비는 비다. 실크로드에 꽃비가 내린다는 시어가 헛말이 아니었다. 그저께 가역관으로 오는 침대차에 본 별빛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투루판->우루무치로 가는 사막의 일출 

 


우루무치(烏魯木齊)의 자원로드  2007. 9. 11 (화)

우루무치는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이다, 우루무치 시가지에서 본 미니버스에 My school, My happiness, My success 란 광고문이 인상적이다. 어디를 가든 영어다.

비단과 향료로 동서 문명의 실크로드 화영산 북쪽에 있는 석굴사원 찬불동과 고대 성곽도시 신강(新彊)은 중국의 가장 서북쪽에 위치하여 우리나라 면적의 2배이다. 신강(新疆)은 한자 강 疆에서도 지세의 특징을 볼 수 있다. 강(疆)자의 활궁(弓)은 서쪽 변방의 국경을 표시하고 활궁아래 토(土)는 잃어버린 땅을, 일(一)은 산맥이다. 삼(三)은 알타이산맥 천산산맥 파미르고원을 표시하고  전(田)은 분지로 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 사이의 중가리나분지,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의 타림분지를 나타낸 것이다. 참으로 용하게도 한자를 갖다 썼다.

투루판 분지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길은 사막 길로 왕복 4차선 아스팔트로 뻗어 있다. 몇 시간을 달려도 사막이요 곧은 도로다. 멀리 만년설이 비치고 언덕 빼기 마른 땅에도 풀은 자라 목동들이 양몰이에 나섰다. 포항 제철소 같은 시설에 연기가 피고 불꽃이 날린다. 도로가 황무지엔 둑을 쌓았다. 물 한 방울이라도 모을 작정이다. 고비사막의 풍경이요 우루무치의 자원로드이다.     

                                                                 

                                                              

                                                               투루판->우루무치 고속도로변의 풍력발전소

 

난주를 지나다 본 풍력발전기보다 옥천문의 규모는 더 크다. 새벽바람에 3백여 대가 날갯짓을 한다. 태양전지 발전 비용의 20%에 불과하다니 차세대 전기에너지로 풍력발전에 의존하는 가 보다.

이제 사막도 이젠 많이도 달라지고 있다. 풍력발전기가 돌고 메뚜기라는 별명의 석유펌프는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하고 있다. 혹 기상 이변으로 물 천지가 되는 날에는 이 사막천지가 평야로 변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나.

중국에서는 고소도로를 공로라 하고 일본에서는 자동차 도로라 하고 한국은 고속도로라 하니 고속으로 달리다 사고가 많다. 길 이름도 생각하고 지었으면 한다. 우루무치로 가는 새벽길은 문명의 충돌이나 났는지 포병단의 대이동이다. 대포를 단 육발이에는 운전병과 4명이 타고 뒷자리에는 완전무장을 한 병사가 국경 수비대로 나선 모양이다. 유비무환이요 자력국방이라 하지 않았던가.

신강 우루무치자치구가 제 목소리를 내기엔 역부족이겠지만 언젠가 그들도 독립국으로 선포할 날이 있으리. 타는 화염산의 정열로 말이다. 신장 위구르의 자치구 중심도시 우루무치의 해발 1.910m에 위치한 톄산(천산)은 영겁이요 천지는 무한이라. 


너무나 인간적인 고창 고분

고금을 통해 인간들은 어떤 색깔의 옷을 입는다. 지금 우리도 옥인, 금인, 석인, 목인의 어떤 패찰들을 목에 걸고 이 세상을 살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벽화 앞에서 많은 것을 상념(想念)하다. 홀연히 떠나는 날, 무엇을 두고 갈 런지. 남은 다 죽어도 자기는 죽지 않은 불사신처럼 욕심을 부리겠지만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의 말씀이다. 

교하고분이나 아스타나 고분은 얼핏 보기에 고창고분은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힘들다. 고창에서 3기의 고분은 당(唐)대의 고분이다. 고분의 토벽에 6곡 병풍을 그렸다.

1곡에는 두 개의 막대기 사이에 토기 하나가 45도로 기우려져 넘치지도 않고 곧지도 않게 겸양의 의미를 상징하는 항아리다. 2곡에 초록색 도포를 입은 여인은 옷섶에 옥인(玉人)이란 패찰을 꽂았다. 옥인이라 옥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하게 청렴결백으로 살라. 3곡은 주황색 도포를 입은 여인은 3중으로 입을 봉했다.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금인(金人)이라 언행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4곡 황색 도포를 입은 선비는 석인(石人)이라, 돌처럼 결심을 굳혀 실행하라는 뜻이고 5곡에는 청색 도포를 입은 남자는 목인(木人)이란다. 무위정직(無僞正直)의 메시지를 담았다. 6곡에는 화병에다 곡식 이삭 대를 여러 개 꽂아 놓았다. 흩어지면 꺾이고 뭉치면 꺾이지 않는 화합을 강조한 벽화다. 고금을 통해 인간들은 어떤 색깔의 옷을 입을 것이다. 옥인 금인 석인 목인의 패찰을 차고 이 세상을 살았는지 돌아 볼 일이다.

다음 고분은 남쪽에서 온 상인의 고분이다. 향수(鄕愁)로 벽화를 채웠다. 6곡 위로 고향으로 나르는 철새들을 그렸고, 매곡마다 원앙새 5마리, 공작 1마리, 꿩과 새끼 6마리, 기러기 암수, 수탉과 암탉 병아리 4마리를 각각 그리고 또 다른 6곡에는 상인의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예쁜 화초들을 그렸다. 얼마나 고국 고향을 그리워했으면 죽어서도 고향을 곁에 두기로 마음먹었을까? 너무나 인간적인 고창고분 벽화 앞에서 많은 것을 상념하다. 이 고분의 미라는 우루무치 박물관에서 산사람처럼 잠들고 있었다.      

어느 날 홀연히 떠나는 날 무엇을 챙겨 홀홀히 떠나갈 런지. 남은 죽어도 자기는 죽지 않고 살 것처럼 욕심들을 부리겠지만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의 말씀이다.



출발 선상에 선 베이징 2007. 9.12(화)

중국 문화나 중국인의 기질은 어찌 알까만 지금 베이징은 출발을 앞둔 준비 자세이다. 이들은 문자혁명으로 획수가 많은 한자를 간자로 만들어 쓰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또 나무라고 따지기를 즐긴다. 참말로 희한한 심성이다. 그들의 모국어를 짧은 한자 실력으로 읽지 못하는 잠시의 불편함을 탓하는 심성은 배려일까? 욕심일까?  

북경은 출퇴근 시간은 활기차다. 간판을 규격화하고, 잘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을 걱정한단다. 1979년부터 개혁 개방으로 정책으로 심천과 산동성 등을 모델로 성공하여 이를 계기로  전국토를 개혁 개방하고 있단다. 모자라는 인력은 시골 인력으로 대처하고 고급 인력은 북경대학으로 몰린 단다. 800만 명의 지원자 중에서 3천명만 선발하여 고습인력으로 키운다. 이 대학만 나오면 출세의 길은 열러 있다. 국가에서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8영 8치

후오타진의 정치철학 8영 8치이다. 사회주의에서 영화로운 일과 수치스러운 일 각각 여덟 가지를 베이징의 어느 담 벽에서 메모했다. 8영 8치를 읽어보면 그들이 나라를 어디로 지향하고 있는가를 알만하다. 과거사에 매여 코드 정치인들도 게시문을 읽어 보았으면 한다. 정권을 쥘 때는 동지가 필요하지만 쥔 정권의 유지는 고급 두뇌로 지킨다는 사실을 모르고 어리석게 날뛴다. 권불십년이라 하지 않았든가.  

사회주의 8영 8치

8영 (8榮)

열애조국지영 熱愛祖國之榮  열렬히 조국을 사랑하라 영화로운 일이다. 

복무인민지영 服務人民之榮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라 영화로운 일이다 

숭상과학지영 崇尙科學之榮  과학을 숭상하라 영화로운 일이다   

성실수신지영 誠實守信榮  성실하고 신뢰하라 영화로운 일이다

신근노동지영 辛勤勞動之榮  어렵고 힘든 노동이 영화로운 일이다   

단결상호지영 團結互相之榮  상호 단결만이 영화로운 일이다 

준기수법지영 遵紀守法之榮  규율을 준수하고 법을 지키는 것이 영화로운 일이다 

간고분투지영 艱苦奮鬪之榮  분투하여 어렵고 고됨이 영화로운 일이다 


8치 (8恥)

위해조국지치 危害祖國之恥  조국을 위태롭게 함이 수치요

배리인민지치 背離人民之恥  인민을 버리는 것이 수치요

우매무지지치 愚昧無知之恥  어리석고 무지함이 수치요

견이망의지치 見利忘義之恥) 이익만 쫓아 의리를 잊음이 수치요

호일악무지치 好逸惡勞之恥  안일로 노동을 싫어함이 수치요

손인이기지치 損人利己之恥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못함이 수치요

위법난기지치 違法亂紀之恥  법을 어기고 기강을 문란케 함이 수치요

교치난일지치 驕奢淫逸之恥  교태 사치 음란 게으름이 다 수치요


고대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 황화 문명, 실크로드를 따라 수 천리의 고원과 골산, 황무지와 대평원, 만년설과 천년의 호수 그리고 뿌연 물빛들은 수묵화의 물감처럼 번지더니 아옹다옹 모여 사는 이웃들을 만나자 금세 망각 곡선에 빠져 제 역할을 유감없이 발한다.

그 숱한 도움의 말씀을 긴 여정에 제대로 메모하지 못한 허술함도 밝히면서 대구박물관대학 조영길 학장님과 이은희 총무님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