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글***/기행문

아! 아드리아海, 발칸半島여/박 윤호

是夢 2008. 1. 3. 22:25
 

아! 아드리아 海, 발칸半島여

2007.10 31- 11. 12

10.31(수) 12:40 인천 발-모스크바 경유-22:20 오스트리아 착 피라미드 호텔


전문 서포터 신 지현양

긴 여정을 안내할 신양은 문학과 교양, 음악과 어학 그 실력이 만만치가 않다. 전문 가이드로서 자리를 굳히고 싶은 그녀는 대학에서 사학(史學)을 공부하였고 그 후  중국사에 심취하다 유럽에 근무하면서 동유럽역사에 관심을 가졌단다.

틈만 나면 모차르트 베토벤 쇼핑 리스트 요한시트라우스의 연주곡을 끝 간 데 없이 들려주었지만 음악엔 유식한지 쓰다달다 말이 없다. 나는 열흘 동안 들은 곡이 지금까지 들은 음악보다 더 많을 것 같다. 음악도 신토불이라 그 나라의 전통음악이나 다양한 노래들을 원하였지만 눈발이 날리는 알프스 산록에서만은 서양음악의 연주곡이 제격이었다.

신양은 이곳 친구들과 사귀면서 느낀 성격을 말해준다. 프랑스 친구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괴팍스럽지만 대개 독서를 즐기고 체코 친구들은 순박하고 직설적이며 진솔한 반면에 슬로바키아 친구들은 깍쟁이 기질이 보인단다. 그런 생각을 스위스친구에게 물었더니 프랑스친구를 이해하면 세계의 친구들은 다 이해 할 수 있다며 동감을 표시하더란다.

신양은 오래전에 구입한 책, 히라노 게이죠의 장송(葬送)을 소개한다. 작가는 23세 나이로 일본 최고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의 내용은 1848년 2월, 격동하는 파리에서 천재 음악가 쇼팽과 천재미술가 들라크루아의 삶의 고뇌와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란다.
쇼팽의 장례식이며 군중들의 심리며 비통해하는 친구들 그리고 고국 폴란드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쇼팽의 모습과 하원도서관의 천정화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심리를 잘 표현한 책의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언젠가는 신양도 그들의 삶처럼  살고 싶은 야망을 담고 있었다. 그 뜻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체코인 요셉기사

오스트리아에서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 연방국인 세루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거쳐 독일 공항까지 무려 10박 11일 5000km의 멀고 긴 여정을 무사히 데려다 준 운전기사 체코인 요셉으로 머리카락은 반백이고 다리도 길어 멋스럽다. 그는 토끼 같은 두 딸을 둔 가장으로 5개 국어가 능통하단다. 그 많은 나라들의 관광지를 한 번 물어보는 일 없이 차를 몬다. 하나 그도 힘들어하는 것은 공짜 화장실을 찾는 일이었다. 그와 헤어지면서 우리 동전 500원 100원 10원짜리를 기념으로 주었더니 고마워하였다.

2007. 11. 1(목) 2일차

오스트리아 비엔나 성슈테판 성당, 시청사, 국회의사당, 용사의 광장,

커판트너 거리 중식 폴란드 크라쿠프로 이동 바벨성, 중앙광장. DEMEL 호텔

모차르트의 도시 비엔나 (빈)

중년의 가이드는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여기서 6년을 살았단다. 일정에도 없는 골목으로 든다. 입구옹벽에 모차르트연주회 포스타가 붙였다. 한 사람이 다닐 골목 끝에  한 건물이 모차르트가 3년이나 살았던 집이란다. 이 골목길은 베토벤도 하이든도 쇼팽도 다녔던 길이란다.     

성 스테판(St Stephen) 성당의 쌍둥이첨탑은 137m로 고딕형의 최고의 미완성의 건물이다, 탑에 얽힌 이야기는 첨탑을 건축하던 젊은 장인(匠人)은 약혼을 하고 떠나와 공사를 하면서도 약혼녀가 하도 그리워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성인에게 약혼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다. 성인은 그렇다면 일을 하면서 누가 불러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일렀지만 하루는 약혼녀가 자기 뒤로 가는 환상에 그만 돌아보다가 실족하여 죽었단다. 그래서 그 공사를 하던 첨탑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이다.

오스트리아 텔레비전에서는 일기예보를 하면서 국토를 동서로 단면으로 잘라 고지대와 저지대의 온도와 운량과 날씨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에는 달의 크기를 그림으로 실려 있었다. 거리의 차 신호등은 길거리 한복판으로 나와 걸렸다. 오늘이 할로윈 데이란다. 가게마다 문이 닫혔고 거리는 한산하였다. 이들은 할로윈 day를 중심으로 해 3-4일 씩 휴가를 내어 조상들의 묘를 찾아 헌화하고 고향을 찾는다. 그래서 그런지 가는 여정의 많은 묘지에는 꽃들로 가득했다. 


2007. 11. 2(금) 3일차

폴란드 비엘리츠카로 이동하여 소금광산.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 HOLIDAY INN

지하 소금 광산

폴란드는 끝없는 침략사로 피곤하다. 민족이라는 명목으로 이민족을 괴롭히고 사랑이란 종교는 타 교도들을 외면하고 문화라는 굴레로 남의 감정에 상처를 가져다준다.

폴란드는 나에게 퀴리 부인과 국어교과서에 나온 ‘마지막 수업’의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나라이다. 크라카우의 구시가지, 비엘리츠카의 유명한 소금광산, 유태인 학살의 무대인 나치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가 관광지나 아우슈비츠는 너무 끔찍하여 외면하고 소금광산을 찾았다.

폴란드에서 나온 한국인 가이드는 다리가 길고 걸음도 빠르다. 말씨도 빨라 잽싸게 그를 쫓지 않으면 이미 해설은 끝이 나 버리기 일쑤다. 지하 102M에서 30년간 조성한 부스들은 좋은 관광 상품이다. 370여개 목재계단은 사람들의 걷는 소리들이  탄광으로 들어서는 광부들 구두소리처럼 저벅댄다. 곳곳에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더니 계단양쪽 판자에는 온통 세계인들의 방명록으로 얼룩지다. 

이 지하 동굴에 말들은 어떻게 데려 왔을까? 하는 의구심은 갓 태어난 망아지 안고 들어와 키워 이용하다가 죽으면 박제를 만들어 세상으로 내 보냈다는 이야기로 풀렸다. 그래서 그런지 폴란드인들은 말고기는 먹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단다.

첫 광장에는 1493년 폴란드 크라카우에서 공부한 코페르니쿠스가 그때 소금광산을 방문한 기념으로 그의 탄생 500주년에 4.5m의 소금기둥에 지구본을 들고선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연탄장수처럼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부터 지하 소금광산의 발견 때부터 광부들의 지하에서 활동한 모습이며 섬긴 신들이며 동화 같은 이야기와 캔 소금들을 지상으로 옮긴 갖가지 기구들을 전시해 두었다.

소금광산의 명물은 성녀 킹가의 성당이다. 지하에서 2.3층의 큰 동굴 내의 규모에 어리둥절하다. 온통 벽면은 암염이라 거기다 예수님의 일생을 벽화로 꽉 두르고  특히 ‘최후의 만찬’은 17cm로 부조한 공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25m의 긴 공간으로 그림의 소실점을 최대로 살린 역작이다.

그 뒤편에 교황 요한의 동상이 서있고 동상 옆벽에는 소금광산의 공로가 현저한 3명의 이력을 새긴 게시판이 있고 한판은 아직도 공백으로 남았다. 언젠가 소금광산을 위한 인물의 내력이 적히겠지만 교황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든가 보다.

공중에 매달린 샹들리에도 소금으로 되었단다. 현란한 불빛아래 사진기를 놓고 삿다를 누르면 찬란한 원형의 무늬가 찍힌다.    

검문소에서 떤 아양

현지가이드를 보내고 슬로바키아로 들어섰다. 체코나 슬로바키아는 해바라기 유채꽃 등의 식물성기름을 생산하는 단계라 이곳 까지 오는 도로 연변에는 바이오 산업단지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들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들인데 우리는 과거사에 매이고 코드에 얽혀 눈만 뜨면 모두가 걱정이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를 거쳐 보면서 본 지형지물들은 대개 밋밋하고 초지는 목초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런 지대를 오랜 시간 보아오다가 수풀이 짙고 단풍이 짙은 풍광이 나타나자 모두들 생기가 돈다. 이곳이 알프스의 타트라 국경공원의 동쪽이란다. 오후 5시, 벌써 땅거미가 진다. 간신히 슬로바키아의 출국심사를 마쳤으니 헝가리의 입국절차가 또 남았다. 이런 절차를 10여 개국을 들락거리며 반복되었으니 조금은 지겨운 느낌이 든다.

하나 또 국경에서는 검문경찰이 버스에 오른다. 헝가리 경찰은 꽃미남이라 누군가 박수로 유도하자 얼떨결에 박수로 아양을 떨었다. 인상적인 것은 국경검문소의 건물이다. 검정색 피라미드형 지붕은 너무 단조하고 단순함에도 지평선 너머 노을에 진 하늘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식하자 샷터를 눌러댄다. 타는 노을도 이렇게 아름답고 마음을 빼앗아 가는구나. 창조주의 선물이여. 감사함이여. 부다페스트로  들어 와 호텔 Holiday Inn에서 묵다.


2007. 11. 3(토) 4일차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 겔러르트 언덕 세체니 다리 성 이슈트반 성당

영웅광장 세로비아 베오그라드로 이동  HOTEL M에 투숙 

집시의 고향 헝가리(hunger)

가이드는 군살 하나 없는 야무지고 이지적인 여성으로 생기가 넘친다. 이런 똑똑한  여성들은 다 해외로 나와 있는가보다. 그들의 도전적인 삶과 어학실력,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들로 보아 다능지수의 소유자처럼 엘리트요 재완들이다 

늘 영어를 차음 배울 즈음에 농담조 아이 엠 배리 헝가리(I am a very hunger)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저 집시들의 유목인이나 사는 배고픔의 나라, 헝가리는 천만에 말씀이다. 다뉴브 강가에 수려한 고성을 보며 이곳에도 그들 나름대로 문화가 있었고 예술이 있었다. 특히 야경의 부다페스트는 칼라 풀 대구가 배워야할 교본이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의 진주니 동유럽의 파리로 불리는 말들을 알 것 같다. 도시 가운데로 흐르는 다뉴브 강에 부다와 페스트를 세체니 다리로 엮어 놓았다. 다뉴브 강은 일곱 나라를 통과하므로 그 이름도 각각이다. 도나우 돈나  다뉴브라 부르지만 동강이명(同江異名)이다.

버섯 모자를 판다는 겔러르트 언덕에 올라 본 부다페스트는 정말 아름답다. 언덕 베기엔 2차 세계대전 때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러시아의 전승비가 10여m 큰 키의 여인이 조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따 안고 멋도 없는 월계수를 받쳐 들고 서있었다. 그녀가 들고선 가장 못생긴 월계수는 헝가리 출신 작가도 러시아의 전승을 축하할 리 없겠지만 패자의 나라의 작가로는 어쩔 수 없는 몫이 아니겠는가.

어느 날 총독부 건물만 때러 부수면 식민지 치욕이 사라질 것 같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역사는 숨겨도 진실은 남는 법,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로 지냈음은 감출 수는 없다. 언젠가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헐려버리겠다던 자들은 지금도 음흉한 짓들을 숨기고 적화통일도 통일이란 논리로 흉계를 꾸미고 있겠지만 역사 앞에서 한번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헝가리는 패전의 기념물들을 그대로 두고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부의 요새,

여기도 헝가리의 고난사가 얽힌 곳이다. 고깔모자 같은 성은 훈족인지 기마민족인지 일곱 부족장들이 쳐들어와 나라를 만든 상징의 성이라지만 그들 행적으론 여기에 성을 쌓을 리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외세가 침략할 때 이곳에 살던 어부들이 요새로 이용한 것이 이름으로 보아서는 사실일 것 같다. 어쨌든 부다페스트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광장 가운데 기마청동상은 쌍 십자가를 든 성이슈트반이다. 그는 우리나라 세종대왕과 같은 치적으로 로마교황으로부터 성자로 인정되었다. 쌍십자상의 의미는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또 하나는 성자의 치적의 표시란다. 청동상 앞 마차시 교회는 사암으로 지어 구멍마다 먼지와 불순물이 끼어 까맣게 때가 낀 것을 유네스코 지원금으로 세척중이다. 지붕은 복원작업으로 오각형 황금타일로 교체되어 옛 명성의 화려함을 되찾고 있었다.

로마건물에는 로마숫자를 흔히 볼 수 있다. 가이드는 한 건물에 쓰인 MDCCCVI를 읽어보란다. 알고 있는 로마숫자는 고작 I V X정도라 일행들이 머뭇거리자 퀴즈 풀듯 X=10  L=50  XC=90  C=100  D= 500  M=1000라고 하였지만 몇 개나 알았을까?

아라비아

숫자

로마

숫자

아라비아

숫자

로마

숫자

아라비아

숫자

로마

숫자

아라비아

숫자

로마

숫자

1

I

11

XI

21

XXI

200

CC

2

II

12

XII

22

XXII

300

CCC

3

III

13

XIII

30

XXX

400

CD

4

IV

14

XIV

40

XL

500

D

5

V

15

XV

50

L

600

DC

6

VI

16

XVI

60

LX

700

DCC

7

VII

17

XVII

70

LXX

800

DCCC

8

VIII

18

XVIII

80

LXXX

900

CM

9

IX

19

XIX

90

XC

1000

M

10

X

20

XX

100

C

2000

MM


MDCCCVI=M+DCCC+VI =1000+800+6=1806년

CCLXVII = CC+LX+VII=200+60+7=267년

MCCLXXXI=M+CC+LXXX+I=1000+200+80+1=1281

MCM=1000+900=1900년이다.


유럽 여행에서 줄곧 듣는 것은 역사의 이야기이지만 대개 침략사로 로마이야기가 전부이다. 로마경기장을 보면서 올림픽경기장으로 생각했지만 영화 ‘벤허’를 본 뒤 치기어린 황제들이 장난삼아 살육하는 자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면 지난날은 망각 속으로 묻혀 버리지만 결국 악한 자들의 오만과 치기에 당하는 쪽은 가난하고 힘  없고 불쌍하고 착한 자만 당하는 것이 역사라는 사실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대부분 로마제국에 지배를 받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를 찾게 되었고 슬라브 민족들은 담합하여 세루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수립하였다. 1945년 유고연방인민공화국은 공산권의 붕괴로 독립하였으나 다민족 다종교의 국가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세루비아인은 다혈질이고 자국민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여 때로는 민간인도 내전에 끼어든단다. 세루비아를 둘러싼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그리스 헝가리 오스트리아들은 지난 세기에 틈만 나면 민족 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도와주는 빌미로 침략하고는 지하자원에 욕심을 낸다.

오늘 밤은 세루비아 아드리아 해변에 자리한 빨간색조로 인상 깊은  Hotel M은 별장 같은 분위기로 좀은 번거롭지만 여권조차 거두어 준다니 편한 밤을 보낼 것 같다.    


2007. 11. 4 (토) 5일차

베오그라드 할레매그단 요새, 사보르나 교회, 스키다리. 야나토 공습현장,

사라예보로 이동하여 RADON PALAZA 호텔로

대구서문상고 출신 권 재승사장

세루비아 가이드는 권 사장이다. 그는 버스에 오르더니 대구사투리로 대구서문상고출신이란다. 서문시장에 인접한 계성고등학교라는 농담이다. 계성고등 75회 졸업생으로 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세루비아로 유학 간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세루비아 사람이 다 되었다. 부모들은 그의 결혼을 반대하다가 심성이 착한 세루비아 처녀를 보자 허락을 하더란다. 부인은 현재 세루비아 중학교 여교사로 근무하고 초등2학년 아들을 두었다. 권 사장도 언젠가는 세루비아 권씨나 베오그라드 권씨의 중시조가 될 위상이라 하였더니 넉살 좋게 웃기만 한다.

할레매그단 요새를 찾았을 땐 가을비가 추적인다. 어디 없이 유비무환이라 성을 쌓아 외침을 막을 준비를 한 흔적이 역역하다. 권 사장은 식당경영 및 가이드로 때로는 유통업에 관여하면서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 18명에게 도우미 역할도 하고 있다.

베오그라드는 세로비아의 수도로 인구 250만의 도시이다. 아직도 거리에는 100년도 넘는 전철이 다니고 있었다. 대개 건물들은 단단하게 지어 벽두께만 해도 50cm이상이란다. 근래에 아드리아 해에서 발사한 미국미사일은 유고연합국방지휘소를 정확하게 표적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박살을 낸 잔해들은 그대로 남았다.

세루비아도 오스트리아에 터지고 터키에 맞고 로마에 짓눌리며 러시아에 눈치를 보는 한(恨)많은 민족들이다. 근래에는 줄을 잘못 선 탓으로 선진국이었던 나라는 서로 갈라지고 왕권을 탈취한 정권은 무능하여 경제는 파국으로 몰아넣었단다.

지난날 터키는 세로비아를 통치하면서 아이들을 끌고 가 세뇌교육과 군사훈련으로 교육을 한 뒤 장교로 임관한 뒤 동족을 살육하는데 선봉에 나서게 하였다니 끔직한 일이었다. 여기 정서로는 터키는 왕따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축구경기 때마다 형제의 나라라고 야단법석이다. 터키는 아직도 유로에 미가입 상태다.

코소보 사태 후 제 민족만 살자고 인간 청소이름으로 죽은 영혼들이 도로 곳곳에  얼마나 많은 묘지에 비석들이 있는지. 강대국들은 인간존중을 미끼로 와서는 하는 일이라고는 세금도 내지 않고 자원들을 착취해 간다고 권 사장은 또 열을 올린다. 전쟁에서 패자는 전범이라 세루비아는 세루비아 사람이 구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사로브나 그리스정교회

유럽은 성당이나 그리스정교회가 주를 이룬다. 예루살렘은 동서양의 문물 교류지요 세계에서 통용하는 언어로 구사할 수 있는 중동지역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시기를 잘 하셨다. 로마제국이 길을 만들어 놓았고 언어를 공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리스도정교회도 처음에는 교황을 수장으로 했으나 교리의 차이로 분리되었고 성당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더라도 성자로 인정하면 성 아무개로 부른다.

사로브나 정교회는 공사를 시작한지가 100년째라 해서 기대감으로 들어섰지만 이삿짐센터의 창고 같다. 겨우 외벽공사를 마치고 내부엔 공사를 하다 그만두었으니   어느 천 년에 완공할 지. 기부금이 들어와야 공사를 하지.

이 교회는 십자상도 우상이기 때문에 허용하지 않고 헌금이나 십일조도 기부금 센터를 통하여 내어야 하고 그래도 촛불을 밝힌 성소가 있다. 낮은 단에 밝히는 촛불은 사자(死者)를 위한 것이고 높은 단의 촛불은 산 자를 위하여 켠단다. 모든 종교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촛불로 기원하는가 보다. 유럽의 수많은 성당과 교회를 둘러보면서 이교도들은 기독교가 만든 문화유산을 어떻게 생각하며 마음에 담아 가는지. 돼지머리 얹어놓고 만사형통을 비는 이들은 무슨 생각들 일까?

산악 보스니아로

풍광에 취해 여유를 부리다 시간이 많이도 늦었다. 세루비아에서 보스니아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한 가파른 국경의 산을 넘어야 한다. 산은 적막하고 길갓집의 백열등은 거미줄에 걸려 희미하게 졸고 차는 가파른 산을 넘지 못해 인간들이 뚫어 놀은 터널로 들어선다. 11도를 가리키든 전자온도계는 0도로 떨어진다. 바깥공기가 찬 모양이다.  

산을 넘어 저녁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다. 산자수명이라더니 밤빛에 비친 물결이 물고기비늘처럼 영롱하다. 전통음악에 분위기 띄운 식당은 4인분 바비큐가 열 명이 먹어도 남을 듯하다. 양도 많고 맛도 그만이다. 갈 길이 멀다는 이유로 술자리를 미루자 술꾼들은 입맛을 다신다. 세로비아에서 권 사장이 선물한 양주에 군침이 도는 모양이다. 

아주 늦은 밤에 이 에리사의 탁구 우승으로 알려진 사라예보에 들다. 몇 년 전 테러로 기둥만 남았던 것을 건사하게 복구한 라돈 프라자호텔은 보스니아에 어울리지 않게 현란하다. 


2007. 11. 5 (월) 6일차

라틴다리, 가지후스레프 배그모스크, 예수님거룩한심장교회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이동  HOTEL LERO

사라예보

호텔 12층은 전망대 겸 레스토랑이다. 사라예보가 한눈에 든다. 지난밤에 몰래 눈이 내린 지 먼 산에는 눈이 쌓였다. 오늘 가이드는 대우출신으로 퇴직한 뒤 줄곧 이곳에 터전을 잡아 NGO선교단체를 지원하고 있단다.

어디를 가도 역사 이야기이다. 사라예보는 유럽의 예루살렘으로 1984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세계탁구대회가 열린 도시나 산지에 둘러싸여 협소한 느낌이다. 종합대학은 없고 3. 4층의 단과대학들은 예술, 공업, 경제 등 명문대학으로서 노벨수상자만 하여도 13여명이 넘는다니 부럽다. 다민족 다종교의 국가라 3명의 대통령이 8개월마다 순환제로 업무를 본단다.  

시청사와 성당과 교회를 둘러보고 라틴다리에 서다. 이 다리는 194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접한 애국청년 7명이 그들을 암살코자하였으나 실패하고 다리 근처에 있던 청년이 그들을 저격하였다. 이로 인해 유고는 러시아의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지원으로 한바탕 한 것이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심장교회’는 이름도 길다. 하지만 성탄절에는 성도들이 다니는  나라의 캐럴을 부른단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대되는 것은 가이드의 아들이 이 교회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전통거리에는 갖가지 만물상으로 손님을 끈다. 불난 듯한 식당에서 점심을 때우고 호텔 레오에서 자다


2007. 11. 6 (화) 7일차 

흰 성벽, 오노폴리안 분수, 프란체스코수도원 정교회 스폴리트  DALMINA 호텔

영덕대게, 두브로브니크

가이드는 한껏 멋을 부렸다. 청록색 바지에 고동색의 굶은 태의 안경, 갈색머리, 늘씬한 키, 카키색 잠바, 연 고동색 말 장화, 넓은 가죽벨트로 눈길을 끈다.

하얀 성벽과 빨간 지붕은 호기심 충동에 충분하다. 아드리아 해(海)의 진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브로브니크의 첫인상은 잘 쩌 놓은 영덕대게 같다는 인상을 풍긴다.

성벽을 둘러싼 산은 온통 자갈로 곧 흘러내릴 것만 같지만 몇 천 년을 버티어 왔다. 눈에 뜨이는 정교회 종탑과 파란 하늘 아래 주홍색 지붕, 하얀 벽의 교회, 싱싱한 초록 숲, 확 트인 파란 바다, 한가롭게 게으름 피우기에 딱 좋은 날씨, 늘씬하고 멀쑥한 아가씨들, 가게나 레스토랑들은 한껏 멋스럽다.  

쪽빛바다에 위치한 고성을 찾는 시인 릴케는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니 여왕이라 극찬했고 영국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지구상의 낙원을 보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보라.’ 했다

외해로 열린 바다에는 섬 하나 없다. 뒷산은 전략적 요새로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  를 들어 올린 쇠사슬은 사형수를 떠올린다, 중심지인 스트라툰 거리에는 번들거리는 대리석이다. 10세기 때 지은 건물사이로 난 골목은 겨우 서로가 비켜 갈 정도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편안하다. 도시 건물은 가게며 식당 카페 상가 주거 건물로 지금도 사용 중이다. 그런 공간의 올망졸망한 가게들은 낮은 조명으로 빼꼼히 내다보는 정경들은 천년을 이어 온 그들의 삶이다.

거리의 화가들은 대개가 늙은이들로 그림은 고향 같다. 한 갤러리 앞에 이젤에 걸어 둔 그림은 퍽이나 천진스럽다. 이런 화풍의 그림은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에도 걸려 있어 호감이 간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레스토랑에서 포장마차처럼 말 조개 한 사발을 내어 놓더니 이내 홍합과 검은 쌀로 팥죽처럼 끓인 죽은 조금 설익은 듯 입안에서 씹힌다. 그것이 더 구미를 당긴다. 한 보름 쉬어 가셨으면 좋으련만 갈 길을 서두른다.   

넥타이 원조 크로아티아

넥타이와 볼펜의 원조는 크로아티아란다. 1600년대 프랑스 루이 14세를 위해 파리로 용병된 크로아티아의 군인들은 가슴에 네모진 천을 매었다. 그 맵시에 반한 프랑스 귀족들은 넥타이 같은 천을 유행으로 매게 되었다. 길눈이 밝고 셈이 빠른 이들은 바쁜 중에도 넥타이 한두 개를 산 모양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리트로 가는 길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다. 홍엽만산(紅葉滿山)이라더니 붉은 단풍이 없으니 황엽만산(黃葉滿山)이다. 정상에서 차를 멈추고 지내온 길을 돌아보니 산은 물들고 흐르는 계곡물은 유유하다. 산장의 휴게소 또한 가을볕에 내 앉았다. 오늘은 호텔 델미나에서 자다  


2007. 11. 7 (수) 8일차

디오필레 시민공원, 성호브르성당, 나로드니 광장, 카메르렌고 요새,

플리트비체로 이동  HOTEL MACOLA

스플리트 (Split)

베오그라드 권 사장 아들에게 아버지 모교의 모자라 기념으로 주고 재래시장을 찾아 모자 2개와 무화과 7유로를 쌌다. 먹을 시간이나 장소도 없는데도 과일만 보면 허욕을 부린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의 제2의 항구도시요 휴양지이다. 현지인 가이드 ‘에브나’는 아줌마차림으로 동판으로 된 디오클레티안궁의 입체평면도로 안내하여 설명을 하는데 나는 뚱딴지같은 생각을 한다. 이 동판 안내도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고물상이나 용광로에서 녹아졌으리라.

디오클레티안 궁

로마황제들은 왜 그렇게도 이름이 길고 읽기가 어둔한지. 디오클레티안 궁은 로마 유적으로 성곽은 700년 전 밭전(田)자 형태로 길을 내고 모퉁이마다 망대를 세웠다. 황제구역, 시중구역 군인구역 서민구역의 4구역에는 각각 문을 내고 황제구역은 아드리아 해와 접해있는 남쪽으로 청동(靑銅)문으로 출입하고 신분에 따라 동 서 북 철문 은문(銀門) 황금문으로 다녔단다.

디오클레타안 황제는 사자의 먹이로 생사람을 장난질한 황제지만 그도 죽을 나이엔 고향을 찾아 다신교와 제우스신을 숭상하며 예수를 박해한 죄로 그가 살던 궁은 그가 죽은 후에 성당을 지었단다.   

왼쪽엄지를 만져라

황금문인 북문 밖에 우람한 성복과 고깔모자를 쓴 어울리지 않는 동상은 그레고리우스이다. 그는 10세기 주교로서 크로아티아인들이 라틴어 성경을 읽어야 했던 불편함을 크로아티아어로 번역한 성경으로 예배를 볼 수 있게 한 주교이다. 전쟁의 피해자들을 구제하며 철저한 재산관리와 교회법령의 정비 무능한 성직자 해임과 박해를 받고 있었던 유대인을 보호하는 등 평화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는 교황이란다.

그의 왼쪽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로 얼마나 만졌는지 청동은 노란광택으로 반질반질하다. 여기서도 동상의 선행은 아랑곳없고 그 좁은 틈새에 선 동상 곁에다 엉덩이를 들어 밀고 포즈잡기에 바쁜 아줌마는 생김새처럼 밉상이다.  

크로아티아 문학의 아버지

황금 문에서 다시 궁성으로 들어오면 길은 해변 쪽으로 기울려져 자연히 성 밖으로 나서게 되는데 광장에 주변에 동상이 서있다. 그는 크로아티아의 시인이요 인문주의자 마르코 마룰리치(1450-1524)이다. 그가 쓴 시는 크로아티아 문학의 효시가 되었고 1521년에 ‘성스러운 과부 유디브 이야기’ 서사시를 썼단다. 현행 크로아티아 화폐 500 쿠나에는 마르코 마룰리치의 초상이고 후면에는 디오클레타안궁의 전경이 그려져 있다.

점심 차 들린 중국식당은 승강기 고장으로 일행들이 갇혔다. 누구하나 알리지 않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다. 이 사실을 손짓으로 알렸더니 문을 따주었다. 이 식당 한 벽면에 山間泉聲自成韻이요 雲中岳色天然通이라. 산간의 샘물 소리는 스스로 이루는 음률이요. 구름 가운데 산색은 천연으로 통하다. 어디를 가나 자연에 살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선한 말이다. 이제 투루가드로 가는 일만 남았다.

스플릿에서 투루가드로 가는 길은 아드리아 해변을 끼고 종일 누빈다. 이 또한 가관이다. 서해 안면도의 노을이나 변산반도에서 본 일몰과는 또 다른 황홀경이다. 가마굴에서 장작이 타듯 용광로의 쇳물이 녹듯 자연이 빚어내는 타는 노을을 못난 내 글로는 역부족임을 자임한다. 어제는 황엽만산을 오늘은 일몰낙조로 하루를 만끽한 셈이다.       

투숙할 Hotel Macola 호텔은 야생동물들이 먼저 우리를 맞는다. 어디서 잡았는지 곰 토끼 다람쥐 등 박제가 소복하다. 제마다 사냥꾼의 폼으로 담뱃대를 물고 쌍안경을 들고 총을 겨누며 노는 꼴들이 꼭 제 죽을 때 모양을 닮아 가소롭다.


2007. 11. 8 (목) 9일차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아마동굴로 이동  MANTOVA  HOTEL

국립공원 플리트비체 (PLITVICE)

크로아티아 국립공원은 7개 정도라, 풀라의 브리유니 공원은 숲이 잘 가꾸어 졌고, 리스니야크 공원은 야생동물들이 많고 파클레니차 공원은 곤충, 파충류, 독수리 등이 서식하지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청량한 공기와 선명하고 투명한 청록색의 호수, 수많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는 자연의 위대한 또 하나의 선물이다.

청록색의 호수는 바닥이 석회석이라 하늘의 빛이 그대로 비치기 때문이라지만 호숫가로 놓인 원목다리는 퍽이나 낭만적이다. 수많은 물길의 폭포들은 댐을 만든 듯 성수기에는 많이들 찾는단다.

문득 깎아지른 절벽을 보다 금강산 골짝마다 새긴 김일성 어록이 떠오른다. 이 바위도 북한에 있었다면 정으로 맞았을 텐데. 통나무 집 가게의 주인은 수공예품으로 손님들을 맞는다. 웃음기는 없지만 넉넉하게 보였다.

여기서 배를 타고 공원을 돌아볼 예정이다. 경관을 둘러보기론 속도가 빠르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운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벌써 우리를 내려놓는다. 

수목원 레스토랑은 점심으로 전어 한 마리에 삶은 감자 2개 토마토 한쪽 야채샐러드를 내놓는다. 입맛을 감친다. 양이 적고 깔끔한 음식이다. 전어를 우리식대로 포크로 뒤적이자 아줌마가 달려와 뼈를 발라 주는 법을 알려준다. 귀한 대접에 귀한 인심이다. 저녁 메뉴는 밀가루로 구운 얇은 호떡에 야채와 고기를 다진 오무라이식 덮밥에다 닭고기와 야채 후식은 크림이 나왔다. 역시 간단하고 푸짐해서 좋다.


2007. 11. 9 (금) 10일차

포스토이나 아마동굴   ADVENA POINT SALZURG HOTEL

지하 보물 아마 (JAMA)동굴

아마 동굴 주차장의 가로수 보호대는 참신한 아이디어이었다. 가로수 주변에 웅덩이를 파고 그 위에 철망으로 덮어 물이 뿌리로 많이 스며들게 하였다. 가로수 주변은 보도블록을 깔아 가뭄이 심하면 나무가 타기 마련이다. 사람이 영양을 체우 듯  나무는 물이 흡족해야 한다. 물이 부족한 환경에 빗물을 그냥 흘러 보내는 것이 아깝지 않는가. 

한글판 안내서에는 ‘포스토이나 동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영국 독일 이탈이아 프랑스판 대부분이고 고작 아시아권은 일본정도인데 생각지도 않은 한글판이라 무척 반가웠다.

아마 동굴은 1818년 현지인의 발견하고 횃불로 들락거려 입구는 많이도 그슬렸다. 20km가 발견되었지만 볼거리는 5km정도란다. 동굴 속은 신비경이다. 그것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고 웅장하다는 이 동굴은 궤도차로 태워다 준다.  

생각만 해도 까마득한 10만 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생성된 종유석과 석순 그리고 그것들이 이룬 석주들은 마치 거대한 오페라 무대를 꾸민 듯 피사탑을 세운 듯 유럽풍의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탄생하였다. 자연은 유구하고 위대함을 연출한 이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왜소한지. 모두들 마음에 드는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 앞에서는 걸음을 멈춘다. 동굴의 가장 넓은 공간에는 한 때 연주홀로 이용하다 강한 음향으로 균열이 생길까봐 현재는 금지된 상태란다. 가히 크기를 집작하리라.

햇빛 한 점 들지 않은 이 크고 깊은 동굴에도 하나님께서는 물들은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의 말씀이 새삼스럽다. 

아이고, 가엾어라  

연주 홀 동굴로 이르는 길에 휴먼물고기(인어 human fish)를 담아 놓은 수조에는 빠알간 살갗이 들어난 도마뱀 같은 휴면 푸시 대여섯 마리가 팔과 다리가 있다고 하지만 안쓰럽다. 눈은 퇴화하고 비늘도 껍질도 없는 휴먼 물고기를 본 외국 관광객 한 할머니는 ‘아이고! 가엾어라.’ 한다고 가이드가 귀띔을 해준다. 인간의 본성과 감성은 동서양 남녀노소가 비슷한가 보다. 이제 길을 재촉하여 브레드로 가다

동화의 나라 브레드

브레드는 솔로베이나의 땅이다. 지금껏 보아온 주택들은 어림짐작하여도 규모로는 엄청 크게 보인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는단다. 풍요는 사람들을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다. 우선 브레드가 그렇다.

줄리앙 알프스의 눈동자니 진주라 불리는 브레드는 호수위에 자리 잡아 동화책 집들처럼 예쁘다. 미끄럼을 타듯 눈이 흘러내린 알프스의 설봉이며 공기가 맑고 기온이 찬 알프스 산간은 여태 본 경관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바람에도 호수의 찬기가 돈다. 호숫가 회색빛 절벽에 매혹적인 빨간 옛 성의 지붕, 물결 위의 떠 있는 듯한 그리스정교회, 낙엽으로 꾸며진 가을나무 밑 산책길, 꿈결 같은 호수의 물결, 잔자갈 밭으로 난 길의 너르진 낙엽 온갖 것들이 한 폭의 수채화로 음악적인 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다.  

무식(無識)함을 먹다

이들 나라들은 하나 같이 주스는 공짜요 물은 유료라 많이들 헷갈린다. 작은 한 병에 1유로라니 우리 돈 1500원이다. 공짜로 마시든 습관은 쉽게 바뀔 리 없어 문득 내 나라가 다가온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선 레스토랑은 이미 온 외국인이 절반의 자리를 차지하고 담소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끼를 굶은 듯 기를 쓰고 덤빈다. 준비된 것은 야채뿐이다. 야채 요리가 오늘의 뷔페식인데도 모르고 야채만 가져와 고추장에 비벼 실컷 배를 채웠다. 앗 뿔사 그때서야 닭고기며 돼지고기를 큰 쟁반에 담아 안긴다. 이런 무식함이 있나. 풀만 정식으로 배를 부린 뒤라 맛있는 음식을 남겨야 했다. 본맛은 모르고 무식함만 먹은 셈이다. 창피하고 부끄럽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도 될 일을 뭐가 그렇게도 바쁜지. 후식은 아예 먹을 생각도 없고… 우리를 보내놓고 그들은 뭐라 했을까?          

아쉬움을 두고 갈 길을 재촉하다.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스트리아에는 입국절차가 없었다. 산간의 기온은 7도로 떨어지고 백양나무의 노란 나뭇잎이 바람에 대롱거린다.

모차르트의  외가 잘츠부르크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다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알프스 산록에는 긴 공사 끝에 개통한지 얼마 되지 않는지 터널입구에 1997 - 2007이란 현수막이 걸렸다. 7.6km의 긴 터널로 쉽게 국경을 넘었다. 터널을 벗어나자 산은 눈바람 안개가 두르고 눈이 내린다. 이곳이 1998년 코엘료가 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등장한 지역이란다. 그 책을 읽어 본적도 없고 들어 본적도 없으니 소귀에 경이다.

집들도 눈 속의 묻히니 한옥 마을이다. 아름다운 전망들을 보기 위해 울도 담도 없앴다지만 겨울 눈 외투 속의 가슴은 함께 있을 이웃들이 그리운가보다. 이런 정경에서 살아도 고독하고 외로워 우울증 환자가 많다니 그래도 복닥거리며 싸우는 듯 사는 내 나라 내 집이 좋다는 생각이 물씬하다. 또 누가 묻는다. 저 초지들의 임자는 누구냐고. 국가가 임자라 100년이고 200년이고 임대만 하면 자자손손 대대로 이 터전에서 살 수 있다니 말문이 막히는지 달다 쓰다 말이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외가가 있어 음악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연중 줄을 잇는다지만 누구 하나 다시 올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날씨는 비를 뿌리더니 적막강산은 눈발로 덮였다. 뮌헨으로 가는 길이나 공항에 눈이라도 쌓여 이륙이 어렵다는 생각은 하나님은 염려하지 말라 했다. 뮌헨 발 모스코바 행 비행기는 1시간이나 지연되었지만 그런 줄도 나는 잠에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눈을 뜨니 비행기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2007.11.10(토) 11일차

독일 뮌헨공항이동 모스코바 경유 기내 숙박 11.11 (일) 인천 착

푸틴이나 알았으면 

모스코바 공항 출입국 사무 처리는 컴퓨터가 구식인지 구물거린다. 아직도 사회주의 잔재 의식이 충만 되어 그런지 기다리는 외국인들은 어찌 되었든 말 한마디 없이 문을 닫고 나서면 그 창구 앞에 줄지어 섰던 사람들은 다른 창구로 가 몰리고 그 창구의 직원 역시 힐끔힐끔 시계를 보더니 퇴근시간인지 전을 거둔다. 그러면 다시 다른 줄에 가 꽁무니에 서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버젓이 행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책임자도 없는지.  

8시20분 모스코바 발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할 출국심사대는 시간이 경과 했는데도 북새통이다. 전혀 차례가 없고 질서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땐 기동성과 과감성이 필요하다. 인솔자는 시간의 다급함을 알고 후다닥 길을 서두니 외국 여행객들은 눈만 멀뚱하다. 이를 놓칠세라 순간 잽싸게 밀고 들어섰더니 모두들 민첩하게 따라 주었지만 다시 쪽방 같은 검색대에서는 신발을 벗기고 허리띠를 풀게 하고 곁 옷을 벗긴다. 안내원도 없고 안내판도 없다. 엉망진창 모스코바 공항출입국, 그래도 잘 있어라. 언젠가는 너희들도 달라 질 날이 오지 않겠니. 이런 일들을 푸틴이나 알았으면 한다.

겨우 한 숨 돌리고 기내에서 준 한 주간지에는 또 땅따기 이야기이다. 카스피아 호수 연안의 인접국들은 호수의 오일과 가스를 먼저 차지하겠다고 2만 이상의 병력이  대치중이다. 러시아는 만 명의 병력을, 카자흐스탄 3천명을, 트르크멘니스탄 2천명을, 이란 4천명을, 아제르바이잔 3천명의 병력과 수도 바쿠에는 미 해군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결국 세계 여러 나라는 평화 유지란 빌미이자만 물밑은 자원전쟁이요 땅따기 먹기다. 발칸반도여 영원 하라 


아! 아드리아, 아드리아 海여

이제 내지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은 낌새가 보인다. 도열한 긴 산들의 연보라 색깔이 토해내는 바위산의 풍관은 발칸반도의 정수요 아름다운 색깔이다. 아 낙엽 진 가을 산, 타는 저녁 놀, 바위산들의 장엄함, 알프스의 쌓인 눈들은 우리에게 베푼 신의 선물이었다. 두고두고 기억에 생생하리라. 

자연은 눈발 속에서도 길을 내어 준다. 장대 같은 수목들, 아름다운 설봉, 고성들이 이루 낸 자연에 대한 위대함과 감사함을 절감하면서 눈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통나무집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이런 감상의 정서를 가이드는 알았는지 연주곡의 볼룸을 높여준다. 그런데 우연히 아주 우연히 커피 한잔을 권해 왔다. 고마운 지고. 버스 내의 감미로운 선율들은 무딘 내 감성도 자연으로 몰아가 한결 커피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자연의 신비요 감사함이다. 


알프스에 함박눈이라  

취향의 찌꺼기는 낯선 음악도 즐겁다 


향수(鄕愁)는

긴 여정의 새김질로 다독이고 


세월도 나이도 잊은 

아! 아드리아 해(海), 발칸반도여  

긴 여정에서 때로는 광활한 대평원의 지평선에서 목초만 재배하는 미련스러움도 탓하였고 풀을 뜯는 소들의 한가로움에서 살아가는 여유로움도 느끼며 퇴색한 농가를 보며 사람 사는 법들이 비슷함도 알았고 끝 간 데 없이 세워둔 앙증스러운 고압선 철탑은 따라 눈길을 보내며 광활한 평원에 대한 욕심도 부렸다. 때로는 바람막이 잡목들이 비산비야를 지키는 자연의 소슬함도 깨달았다.


욕심내지 않아도 사랑하며 살아 갈 일을 무슨 흑심들을 품고 살아가는지. 서로 먹고 먹히는 역사 속에서도 관광이란 호화로움으로 보고 듣고 느끼며 영혼의 풍요를 구가 하겠지만 그래도 자연의 신비스러운 위대함과 인간에게 베푸는 감사함 속에서 그들만이 만들어가는 문화며 사는 생활모습들은 눈을 감아도 내내 여울져 흐른다.


긴 여정에 다른 사람들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이웃의 모습에서 나의 연약하고 부족함도 돌아보았고 늙은이나 젊은이나 제 욕심만 채우는 숱한 일들에 침묵의 눈길로 그들을 대하는 심성은 오랜 질고를 이겨 낸 인내의 향기가 아니고는 감내할 수 없는 심성을 보며 감동과 함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