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나무 순례***/천연기념물 순례

천연기념물 59호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박상진 교수

是夢 2006. 7. 19. 14:47
<2> 천연기념물 59호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
경향신문 2003.05.01 문화면


선비는 나무를 길렀고 나무는 선비를 키웠다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정문 수위실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공자의 신주를 모시는 문묘(文廟)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 건국 초기에 창건된 문묘는 정전인 대성전,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등으로 이루어진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선조 말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명륜당의 넓은 앞마당에는 몇 아름이 됨직한 커다란 은행나무 2그루가 서로 맞닿는 가까운 거리에 자라고 있다. 대성전 안에도 2그루가 더 있어서 문묘에는 4그루의 오래된 은행나무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제사 드리자 암수가 바뀌었다는 기록-


‘증보문헌비고’란 옛 책에 보면, 중종 14년(1519) 대사성 윤탁(尹倬)이 명륜당 아래에 두 그루를 마주보게 심었다 한다. 기초가 튼튼하여야만 학문을 크게 이루듯이, 나무는 뿌리가 무성해야 가지가 잘 자라므로 공부하는 유생들도 이를 본받아 정성껏 잘 키울 것을 당부하였다. 또 같은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하나 더 있다. ‘옛사람들이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행단(杏壇)의 제도를 본떠서 문묘의 뜰에다 은행나무 2그루를 마주 심었더니, 열매가 맺을 때마다 땅에 떨어져 썩은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노비들이 줄을 서서 이를 주워가므로 앞마당이 시끌벅적하여 엄숙해야 할 문묘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성균관의 한 관리가 제사를 지내면서 열매 때문임을 문묘에 고유(告由)하였더니, 다음해부터 다시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암나무가 수나무가 될 수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사실은 암나무가 열매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자 베어내고 수나무를 다시 심었을 것이다. 조상을 섬기는 제사는 이렇게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고 후손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말일 따름이다. 제사 한번에 암수가 뒤바뀐다면 세상 참 어수선해질 일이다. 연유야 어쨌든 오늘날 문묘의 4그루 은행나무는 모두 열매가 달리지 않은 수나무다.

천연기념물 59호인 은행나무는 굵은 원줄기를 중심으로 싹이 돋아 새로 자란 7개의 한아름씩이나 되는 ‘싹 나무’가 주위를 호위하듯이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밑동의 전체 둘레는 자그마치 12.1m, 키가 26m에 이르는 거구다. 가지 뻗음도 사방으로 고루 발달하여 주위 건물과 조화로우면서도 웅장하다. 옛 선비들의 크고 넓은 기상을 나타내 보이는 듯하다. 나이는 500년, 거의 조선왕조 내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자라온 역사속의 은행나무다.


-한국에 흔치않은 나무 혹 ‘유주’ 간직-


이 나무는 특별한 모양의 혹을 달고 있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남쪽으로 뻗은 굵은 가지에는 마치 방망이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기다란 혹이 아래로 달려있다. 유주(乳柱)라는 이름을 가진 일종의 공기뿌리다. 진짜 뿌리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갖는다고 하나 아직은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3개의 유주가 같은 곳에 붙어있으며 2개는 길이가 길고 나머지 하나는 짧다. 다른 가지에도 또 한 개의 유주가 더 있다. 모양새가 젖 모양이면서 기둥처럼 생겼다하여 유주라 하였으나, 실제로 남근 모양에 더 가깝다. 흥미롭게도 유주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면서 자람을 계속하여 조금씩 굵어지고 길어진다. 최근에는 충남 태안의 흥주사 은행나무에 달린 남근 모양의 유주가 자꾸 커진다고 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끈다. 유주는 우리나라 은행나무에서는 잘 볼 수 없으나 일본의 은행나무에서는 아주 흔하고 그 발달도 현저하다. 우리보다 공기 중의 습도가 높은 까닭이다.

〈박상진 경북대 교수/ sjpark@knu.ac.kr〉


문화재 이름 :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59호 1962.12.03 지정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3가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