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 사진***/아름다운 자연

[스크랩] 박달나무(박상진 교수의 나무 이야기를 검색 해 봤습니다)

是夢 2006. 6. 13. 18:17
단군신화를 보면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서 세상을 다스린다. 단(檀)은 박달나무를 의미하므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를 박달나무로 생각하고 있다. 5천년전의 신화에 나오는 나무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겠다는 자체가 무리이겠으나 선조 들과 가까이 있었던 나무만은 틀림이 없다.

 옛 가옥의 생활필수품으로 안방마님의 공간인 대청마루 한쪽 구석에는 어김없이 다듬이 돌과 다듬이 방망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명주옷감을 감아 다듬이질 할 때 쓰던 홍두깨와 함께 시집살이 고달픔의 상징물이다.

 가을밤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맞추어 방망이질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옛 여인의 애환이 서린 생활도구였다. 또 빨래방망이나 디딜방아의 방아공이와 절구공이, 아름다움을 가꾸던 마님의 얼레빗, 백성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나졸들의 육모방망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도깨비를 쫓아내는 상상의 방망이도 바로 박달나무다.

 지금도 단단하고 힘센 것을 말할 때는 박달나무 방망이로 대표된다. 남성의 심벌을 은유적으로 비유하는데서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무명의 시민으로부터 얻어맞는 방망이도 역시 박달나무다. 나무를 찍으면 오히려 도끼가 부러질 정도로 단단하다 하여 일본인들은 아예 도끼 분질러지는 나무란 뜻으로 오노오레(釜折)나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어디에나 잘 자랐으므로 박달고개란 지명도 흔히 있다. 대표적인 곳은 충북 제천시 봉양면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 경계에 있는 작은 고개인데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이어지는 옛 노래 가락으로 익숙해진 곳이다.

 고려사에 보면 지금의 박달재와 동일한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종 4년(1217) 김취려 등이 충주, 원주 사이로 거란군을 추격하다가 맥곡에서 교전하였으며, 박달재까지 추격하여 크게 쳐부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박달나무가 많이 나는 곳은 박달재에서 머지 않은 문경새재가 흔히 알려져 있다. 어느 시인은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 큰 애기 손목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 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고 읊조리고 있다.

 이렇게 박달나무가 유명한 탓에 박달이란 이름이 붙은 나무도 많다. 개박달나무, 물박달나무는 진짜 박달과 사촌쯤은 되나 까치박달은 서어나무에 가까워서 열 촌도 넘고 가침박달은 장미과(科)에 속하므로 아예 족보가 다르다. 사람들이 이름이 헷갈린다고 투덜대지만 이름을 붙여준 사람 탓이지 나무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잎이 떨어지는 큰 나무로 한아름이 넘는 큰 나무가 되기도 한다. 어린 가지에서 제법 팔뚝만한 굵은 가지도 벚나무처럼 가로 숨구멍이 있으나 차츰 굵어지면 줄기는 큰 조각으로 벌어져 비늘처럼 떨어진다. 잎은 손바닥 반 만하고 달걀모양으로 밑은 둥글고 끝은 뾰족하며 톱니가 있다. 잎 뒷면을 손으로 만지면 약간 끈적끈적한 것이 박달나무의 특징이다. 꽃은 암수 한 나무로 암꽃은 위로 서서 피며 수꽃은 내려 숙여서 초여름에 핀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sjpark@knu.ac.kr>

출처 : 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
글쓴이 : 늘 뫼 원글보기
메모 :

'***송연 사진*** > 아름다운 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통도사 극락전 감나무  (0) 2006.06.13
[스크랩] 미스킴 라일락  (0) 2006.06.13
[스크랩] 가침박달  (0) 2006.06.13
[스크랩] 가침박달  (0) 2006.06.13
[스크랩] 미선나무꽃  (0) 2006.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