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노란 꽃망울을 흠뻑 터뜨린 산수유. ② 전남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산수유 고목. ③ 경남 의성 사곡마을의 산수유. ④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산수유 열매.
우리나라의 봄은 산수유·생강나무·개나리꽃에서부터 노랑나비·노랑병아리에 이르기까지 유독 노란빛이 돋보인다. 산수유는 다른 노랑꽃나무보다 가장 먼저 꽃이 핀다. 잎이 나오기 전의 나뭇가지에 산수유가 송골송골 꽃 치장을 하면서 우리의 산하는 칙칙한 겨울 풍광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콩알만 한 작은 노랑꽃이 20~30개씩 모여 만든 예쁜 꽃송이가 나무 전체를 뒤덮는다.
산수유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정원이나 크고 작은 공원의 조경수로 애용된다. 꽃나무이자 약용식물이기에 수십, 수백 그루를 한꺼번에 심어 가꾸기도 한다. 전남 구례 상위마을, 경북 의성 사곡마을, 경기 이천 백사마을은 산수유가 무리 지어 자라는 대표적인 곳이다.
꽃이 진 산수유는 주위의 짙푸름에 숨어 버린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한 나무에 수천 개씩 갸름한 오이씨 모양의 붉은 열매가 달리면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색 하늘과 환상적인 어울림을 연출한다. 봄날 샛노란 산수유 꽃의 변신이 잘 믿기지 않을 정도다. 산수유 열매는 아름다운 모양새는 둘째 치고 원래 약제로 유명하다.
『동의보감』에 ‘음(陰)을 왕성하게 하며 정력과 신기(腎氣)를 보하고 성기능을 높이며 음경을 딴딴하고 크게 한다. 오줌이 잦은 것을 낫게 하며 늙은이가 때 없이 오줌 누는 것도 낫게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대표적인 정력 강장제다.
그렇다면 수많은 여인에게 둘러싸여 산 왕조시대 임금들이 정력제로 산수유를 먹었을까. 가까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임금님께 올린 탕제(湯劑)를 보면 ‘산수유탕’은 찾기 어렵다. 오늘날 ‘남자한테 좋긴 한데…’로 시작하는 어느 회사 광고 카피처럼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임금님도 알았을 터이다. 탕제를 올리는 의관이 민망해 기록을 빠뜨린 것인지, 아니면 임금의 건강을 생각해 아예 차단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산수유는 우리 땅에 자생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원래 고향은 중국 중서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삼국시대로 짐작한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신라 48대 경문왕(861~875)은 임금이 되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의 귀처럼 길게 자랐다. 이런 사실은 오직 임금님의 모자를 만드는 장인(匠人)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할 수 없었는데,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자 용기를 냈다. 홀로 도림사(道林寺)의 대나무 숲 속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마음껏 외쳤다. 그는 평생 가슴에 담아 왔던 비밀을 떨쳐내 버리고 편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 속에서 장인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왕은 이게 듣기 싫어서 대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하지만 임금님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겨우 당나귀란 말만 빠지고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는 여전히 났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산수유 고목 한 그루가 자란다. 키 16m, 뿌리목 둘레 세 아름에 이른다. ‘산수유 시목(始木)’이라 하며 1000년 전 산둥반도에서 시집온 처녀가 처음 가져왔다고 전해지나 실제 나이는 300~400년 정도다. 지금 달려가면 이 나무는 꽃이 절정이다. 바로 옆 상위마을 산수유 축제는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