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나무의 나무껍질은 하얗다. 화피(樺皮)라고 한다. 잘 썩지 않아 여러 용도로 쓰인다.
시인 백석(1912~95)이 1938년 함경도에서 쓴 ‘백화(白樺·자작나무)’를 읽어본다.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이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북한의 산골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참나무를 만나듯 이렇게 자작나무가 많다. 백석이 노래한 자작나무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강원도 인제읍 원대리의 이름도 예쁜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 바로 그런 곳이다. 3.2㎞에 걸치는 산길을 따라 좌우로 곳곳에 자작나무가 무리 지어 숨어 있다. 눈 속에 묻힌 지금쯤 찾아가면 이름처럼 조용히 누군가와 속삭이면서 걸을 수 있는 낭만의 숲이다.
자작나무는 우리 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선 화피(樺皮)라고 하는 껍질의 쓰임부터 알아보자. 줄기에 하얀 종이를 겹겹이 붙여둔 것같이 생긴 화피는 얇게 벗겨내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는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천마도 장니(障泥)가 출토됐다. 32인치 TV 화면 크기 남짓한 장니는 말안장에 깔아 흙 튀김 방지에 쓰인다. 천마도의 바탕 캔버스가 바로 자작나무 종류의 껍질이었다. 이외에도 서조도(瑞鳥圖) 등 천마총 출토 유물의 여러 장식품에도 널리 쓰였다. 잘 썩지 않고 오래 보존할 수 있어서 북부지방의 서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도 화피로 싸서 묻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보온효과도 뛰어나 지붕을 이는 데 애용됐다.
화피는 활을 만드는 재료로도 빠질 수 없었다. 조선 성종 22년(1491) ‘활은 모름지기 화피를 써서 겉을 감싸야만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사용할 수 있다’라는 기록에서 그 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화피는 기름기가 많아 촛불이나 호롱불 대신 불을 밝히는 데에도 애용했다. 우리는 흔히 결혼을 화혼이나 화촉을 밝힌다고도 하는데, 이 단어에 들어 있는 ‘화(華)’자가 바로 자작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작나무란 이름도 껍질이 탈 때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나는 데서 따온 의성어다.
자작나무 목재도 기둥에서 장작까지 북부지방 사람들에게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이었다. 근세에 들면서 자작나무는 중요한 쓰임이 하나 더 생겼다. 목재를 잘게 갈아 펄프를 만들면 품질 좋은 종이를 생산할 수 있어서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